소명과 섬김의 삶

by 이재섭 posted Oct 1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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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 15일이 되면 또 하나의 생일을 맞이한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23년 전 1985년 10월 15일 목사 임직을 받았던 날이어서 개인적으로 기념일인 셈입니다.
스무살에 신학교에 입학해 중도에 군에 다녀온 외에 7년 간 신학 수업을 한 끝에 목사 임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어느새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23년 가운데 절반 정도를 선교지에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 현실이 한국인 크리스챤 가운데 누구 하나 만남을 갖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요즘 읽은 <바울의 영성>이란 책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총신대 신약학 교수이신 심상범 목사님이 쓰신 책으로 고린도 교회를 배경으로 쓴 책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떨림(십자가), 울림(윤리), 어울림(공동체)로 아래는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무서운 적과의 싸움(투쟁)이 있다면 그것은 방종과 방탕, 그리고 무질서와의 투쟁(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공동체)안에 내재해 있는 이 싸움을 위하여 자신을 채찍질해야 할 때입니다.
군림에서 섬김으로, 나뉨에서 나눔으로 분쟁에서 화해로 나타남에서 세움으로 교만에서 사랑으로 자랑과 자만에서 온유와 절제와 희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만찬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공동체)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 한국 교회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목과 질시와 다툼으로 나아온 분열된 한국 교회는 성만찬의 올바른 시행을 통하여 주의 거룩하신 몸 아래에서 서로 사랑과 화평과 연합을 이루는 거룩한 몸으로서 세상 앞에 서야 한다. 이것이 21세기 한국 교회의 과제입니다.

은사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공동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선물은 봉사의 수단으로 책임이 따르며 그것은 교회와 세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책임)이 요구하십니다.” “적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부여하신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은사들은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교회는 다양한 지체들을 가진 그리스도의 몸(“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으로서 이들 다양한 지체들은 몸 가운데서 서로 사랑으로 함께 돌아보는 삶(“함께 고통을 당하고 함께 즐거워 함”)을 살아야 합니다(고전 12:12-27).
지체로서 서로 돌아보는 삶은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부여하신 다양한 은사들(4-11절)과 직분(28-30)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은사들을 가진 다양한 직분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서로 사랑 가운데 돌아보면서 교회의 목적인 “세움”(성숙/자람)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몸으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는 많은 지체들(약한, 요긴한, 아름다운, 귀한 영광스러운)이 있는데 이들은 상호 결속과 의존과 봉사를 통해서 자라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몸의 지체는 다른 지체를 필요로 합니다. 서로 돌아보지 않으면 모두 허약해지고 망하게 됩니다. 지체들은 몸 안에서 서로 깊이 연결된 가운데서 한 기능을 하고 생존하며 발전합니다. 바로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태어난 그리스도의 몸이다.

크리스챤의 표지는 사랑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4-35).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땅에 실천되었습니다. 이 사랑은 성령에 의하여 신자의 삶에 나타나는 열매입니다(갈 5:22).
사랑의 삶이 크리스천 삶의 최상의 유일한 삶입니다. 사랑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 사랑은 결코 소멸되는 사랑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7). 그러므로 이 상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공동체의 삶이란 서로가 ‘거룩하고 연합된 몸’을 세우기 위해 질서와 조화와 협력과 화평 가운데 행해지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타남’의 영적 은사들인데도 때로는 잠잠할 때가 있으며 제재를 받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적절한 분별력과 질서가 요구됩니다.
바울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하나님의 모습이란 화평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고전14:33) .

바울은 동역자들을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하라 나는 저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고전16:10-12)
교회 일군을 위한 바울의 마지막 권면을 살펴봅시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전16:13).
신앙인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야 합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16:14). 또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일꾼의 모습은 어떤 사람들인가.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15절)” 스스로 헌신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로 은혜와 사랑의 코이노니아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의 관심은 특정한 한 지역교회에 머물러 있지 않고 우주적인 교회를 향해 열려 있음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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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는 바로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오십대 중반의 목사가 지척에 있음에도 굳이 만남을 피해가며 자신들(?)끼리 교제를 갖거나 자신과 후원자 또는 측근 신자들과의 관계만 유지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젊은 크리스챤들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시베리아의 찬바람보다 더욱 썰렁하게 느껴지는 우리네 현실을 바라보면서 서로 섬김의 도리를 다할 날이 속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사진설명> 1985년 10월 15일 동서울노회 목사 임직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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