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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장래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이 빠짐없이 투표에 참가했으면 합니다. 많은 국민이 참여해야 다수가 기대하는 분이 대통령으로 선출될 것입니다. 해외에 나와 있는 재외 국민은 결과만 지켜볼뿐 투표에 참여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선거철이 되면 40년 전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경쟁자에게 우정의 한 표를 선사한 결과 뜻밖의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그래도 후회가 되지 않는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얼마전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생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꼭 한번 만나고 싶었던 친구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에 가게 되면 이 친구를 만나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습니다.

60년대 말 어느 날 당시 서울 변두리였던 남성초등학교에서 전교 회장 선거가 있었습니다. 4학년 이상 학생회 임원들이 거의 모두 참석했는데 천막학교 출신은 나 혼자였습니다. 주위에서 회장 후보의 한 사람으로 나를 선발해 주었습니다.

집안이 어렵게 되어 가족이 빈손으로 서울로 이주해 온 탓에 정규 학교에 갈 엄두도 못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교회 천막학교에 다니면서 성경공부와 더불어 밀린 학업을 연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학교 반 배정을 위해 흑석동 은로초등학교와 양재동 신중초등학교 그리고 더 먼 곳에 있던 정규학교를 오가던 학생들과 사당동에 세워졌던 교회 천막학교 두 곳 학생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편입을 위한 실력 평가 겸 반 편성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정규 학교와 비정규 학교를 동시에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입니다.

편입 시험을 치는 날 커다란 칠판 앞에는 진짜 선생님(천막학교 아이들은 정규학교  선생님을 이렇게 불렀다)이 서 계셨습니다.  초겨울에 치러진 시험이라 나는 당시 최고 학년인 5학년에 지원했습니다. 담임이셨던 배봉오 집사님이 시험장까지 따라 오셔서 내게 당부하셨습니다.
 “너밖에 믿을 애가 없다. 우리 교회 천막학교 실력이 어떤가 보여 주라.”

  그 결과 내가 남자 1등으로 밝혀졌고 인근 은로에서 임원을 하고 공부도 잘했다는 박모 학생이 2등을 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정규 교사가 한 명도 없었던 비정규 천막학교의 승리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200여명의 5학년 전체 학생이 한 교실에 모여 수업을 받았습니다. 책상과 걸상이 모자라 마루에 앉아 수업을 받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반 편성 시험 성적 결과 때문에 쉽게 내 얼굴이 널리 알려져서인지 통합반 반장으로 뽑혔습니다. 

  얼마 후 반이 셋으로 나누어졌고 3반 반장 겸 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래서 전교회장 선거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내게도 한 표가 주어졌고 순간 나는 누구를 찍어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경쟁 상대는 바로 박 모 학생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이지만 내가 나를 찍는 것은 비양심적인 태도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강력한 경쟁자를 찍는 것은 자칫하면 내가 탈락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순간 회장 가망이 없는 후보를 찍어 기권표 처럼 만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역시 비겁한 태도로 보였습니다.그래서 용기를 내어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경쟁자에게 우정의 한 표를 선사했습니다.

  그 결과 14:15 즉 한 표 차이로 내가 지고 말았습니다. 아마 내가 날 찍었다면 오히려 한 표가 앞설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친구는 과연 누구를 찍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친구가 날 찍었다면 완전히 앞선 셈이지만 그 자신만 아는 일입니다.

  조금 후 감독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자 시간상 재투표를 않고 차점자를 부회장으로 한다.” 고 선언하셨고 결국 나는 전교부회장이 되었습니다. 천막학교에서 배운 신앙 훈련은 희생과 사랑이었습니다.  이때 나는 내 양심을 지켜 후회 없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생활은 시일이 지나도 변하기 않았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도시락을 싸가 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때로는 공책도 연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숙제조차 해 갈 수 없었습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를 느꼈던 탓에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기도 하고 여름 방학엔 아이스케키 통을 매고 한강변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사당동에서 신문을 들고 국립묘지를 지나 방배동을 거쳐 양재동까지 돌리자면 2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그야말로 문명의 사신이 되어 먼 길을 걸어다녔습니다. 돌아올 때는 버스 차장에게 신문을 하나 주고 시외버스로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그 화려하게 변한 강남에 신문지국이 하나 제대로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을 여러모로 돌보는 것이 반장인 나의 직무였습니다. 급우 중에 고아원에서 온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머리를 빡빡 깎기  때문에 금방 구별이 되었습니다. 누가 머리를 깎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고아원 원장님)가 깎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고아를 분단장으로 임명하자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가 없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동정이 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보다 더 불행해 보이는 대상에게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난 학교 졸업하는 게 싫어.” 졸업을 앞두고 한 학생이 내게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습니다. “왜, 넌 중학교도 가잖아.” 하자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습니다.
 “난 이대로가 좋은데- 너 같은 애하고도 친구로 지낼 수 있고- 난 여길 졸업하면 아마 나쁜 애가 될 거야. 사실 계모와도 사이가 안 좋아. 앞으로 누가 날 친구로 받아줄까.”
 
  평소 늘 전체 1등을 한 탓인지 졸업식 때 우등상 수상과 아울러 졸업생 대표로 뽑혔습니다. 졸업식 날 처음으로 어머니가 학교에 왔습니다. 다른 학부모들이 모두 어머니를 환영했습니다.
  “반장 엄마, 거 상이 뭔지 좀 풀어 보구료. 공부 잘하는 아들 두어 좋겠수-”  포장을 뜯자 시계가 따르릉-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탁상시계였던 것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내가 교육감 상을 타지 못한 데 대해 어머니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선생님들 간에 상을 추첨으로 정하기로 했더니 그만 다른 반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또 그 상품도 영한 사전이라 쟤한테 당장 필요할 것 같지도 않고요.” 하지만 우리 형편이 어려워보여 선생님들 대접을 못할까봐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릅니다(교육감 상은 박 모 학생이 차지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한 채 이리 저리 방황하다가 모처럼 가진 학교 생활이 그만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우리 형편에 교복과 가방을 사고 학비까지 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옆 반 반장도 형편이 어려웠는데 집 가까이 있는 고등공민학교로 갔습니다. 그는 내가 학업을 중단한 것이 못내 안타까웠나 봅니다.

 “우리 학교로 와라. 학교에 얘기해서 장학생으로 해 줄게. 돈도 안 내도 돼.”  
“글세 난 옷 하나 살만한 형편도 안 되는 걸.”
 “학교에 말해서 그냥 다니도록 해 부탁할게. 실력을 보아 학년도 올려줄 수 있을 거야.”
 “괜찮아, 대신 열심히 살아갈게. 고마워.”  
(이때 이 친구의 말을 들었다면 인생의 행로가 더 쉽고 알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취직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바깥 세계는 내가 배운 신앙과 전혀 다른 이방 세계 그대로였습니다. 아직 어린 청소년들인데도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이 보여 어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십이 넘는 오늘날까지 맥주 한 잔 먹어보지 않고 살아온 것은 어릴 때 천막학교를 다니며 신앙 훈련을 쌓은 탓이라 생각됩니다).

 “공부를 해야 한다. 이런 이방지대와 상관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야 돼.”하고 자신에게 용기를 심었습니다.
 “쟤는 우리 반 반장이었는데 지금 일하러 가나봐.” 어느 날 출근 길에 버스 뒷자리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서로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두고 봐라. 공부가 결코 학교 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독학으로라도 학업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중고교를 다닐 기회를 갖지 못하고 모두 검정고시를 합격한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1974년 신학교를 입학해 7년간 수업을 받은 끝에 1985년 10월 목사 임직을 받았습니다.
1999년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나갔다가 2000년 7월부터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사역 중입니다.

40년 전 나를 자기가 다니는 학교로 데리고 가기 원했던 신앙심이 깊고 착했던 친구-
그의 소식이 정말 궁금했는데 지금 지방 공무원 과장으로 재직 중이라고 합니다.
정말 인생의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뒤늦게나마 그의 삶을 축하해 주고 싶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이별을 아쉬워하던 친구는 서울에서 작은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창들의 근황을 알려준 친구가 연말 동창 모임에 가서 제 소식을 알려주게 되면 몇몇 친구들이 천사홈을 방문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만큼 유권자들께서 한 표의 권리를 잘 행사해 주시기를 다시금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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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를 이루는 사람

나는 그대 곁에 있노라
비록 그대는 저 멀리 있어도
그대는 내 가까이 있노라.
해가 저물면
이내 별은 나를 위해 반짝이리.
오! 그대가 여기 있다면이야 …
-괴 테-

수목이 우거지 숲, 별이 빛나는 밤입니다.
침묵이 흐르는 적막의 시간이 군중 속의 나를 덜 외롭게 합니다.
그 곳은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순수함과 진실함 숨결이 있습니다.
뛰어나지 않는 그 모습이 어쩌면 저리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가!

젊은이여, 그대는 조화의 삶, 마음이 가난한 자로 남아야 합니다.
그때에 그대 곁에는 우는 이가, 외로운 이가, 가난한 이가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사진설명- 눈과 얼음의 나라 선교사로 나와 있는 이 선교사
수년 전 이르쿠츠크 중앙 광장에 세워진 얼음조각 앞에서-
매년 얼음 조각을 세우는데 올해는 아직 공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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