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this page
2007.05.12 17:35

시베리아의 봄

조회 수 330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시베리아의 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대지 위에 싹이 나고
죽은 듯이 지내던 나무에게서 순이 돋고
푸른 잎이 하나둘 보일 때면
“드디어 봄이 왔다” 하고
어린아이 마냥 탄성을 외치고 싶다.

나이가 오십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봄이 그리워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루하리만큼 기나긴 겨울을 지내는 동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늘 그대로 있는 것만 같다.

온통 눈에 싸인 도시 미끄러운 빙판 길-
벌거벗은 나무들- 풀 한 포기 없는 땅-
자녀를 둔 가장, 선교사라는 신분 때문에
긴 겨울에 대해 푸념조차 늘어놓을 수 없다.

시베리아에서 일곱 번의 겨울 보내면서
마음속으로 바래온 것이 있다면 봄이 한 달만
빨리 왔으면 하는 기대였다.
몸도 썩 좋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조차 없는
시베리아에서 푸른 잎사귀만 보아도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그런데 올 해들어 놀라운 변화가 일고 있다.
대자연의 섭리는 해가 바뀌어도 대동소이한데
지난해 겨울은 유난히 강추위가 오지 않아
바이칼 호수가 꽁꽁 얼어붙지도 않았다고 한다.
4월 말이 채 못 되어 나무순이 돋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봄이 성큼 빨리 오려나 생각됐다.

아니나 다를까 사월에 순을 내는 나무가 보이더니
오월 초에 벌써 일부 나무에서 잎을 내기 시작했다.
벌써 겨울이 끝난 것이다. 탄성이라도 지를만 하다.
나무들도 자기 몸이 얼어죽을 만큼 서둘러 잎을 내지
않는다. 앞으로 더 이상 추위가 없다는 뜻이다.

수년 전에 시베리아 태생 크리스챤인 야콥 할아버지
와 자주 만날 일이 있어 물어보았다.
“시베리아의 봄은 언제 오는가 하고-”
그러자 자신의 손을 펴보이면서
“봄이 오는 때는 하나님만 알고 계신다.
언제 봄이 오는지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하지만 나무가 잎사귀를 내면 봄이 온 것이다.”
아무리 날이 따뜻해도 나무가 잎을 내지 않으면
또다시 눈과 한파가 몰려올 수 있다는 뜻이다.

올해는 내가 마음속에 바란 바대로 봄이 한 달
먼저 찾아온 것 같다. 정말 뜻밖의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나뭇잎이 자라나더니 어떤 나무
에서는 꽃이 피어 봄 향내를 풍기고 있다.
흙이 많은 도시답게 사방에 민들레가 노란 빛을
더해가고 있다. 민들레 영토가 꽤나 넓다.
푸르러가는 시베리아의 봄이 위로가 된다.

사람의 마음에도 이처럼 봄날이 오면 좋겠다.
시베리아의 겨울만큼 잎도 꽃도 볼 수 없는
메마른 나무처럼 살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이 신앙인이라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고
빛의 자녀다운 면모를 지녀야 한다.
시베리아의 봄을 맞아 이 땅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도록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




**************
자작시


겨울채비



시베리아의 가을바람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낙엽들

노랑 빨강 갖가지 나뭇잎들이
수놓은 아름다운 세계

나무들마다 겨우살이를 앞두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제 긴 겨울이 오면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시베리아의 찬바람을
맨 몸으로 이겨나가야 한다.




겨울노래



시베리아의 겨울은
기다려도 기다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얗게 눈 덮인 나무마다
죽은 듯이 움츠려 있고

뿌리조차 얼어붙은 듯
숨소리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어디쯤
봄소식을 실은
바람이 오고 있을까.


사진- 임대해서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 나무들이 많이 있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나뭇잎과 꽃이 반갑기만 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2 위험지역 선교전략 재점검해야 이재섭 2007.07.28 1835
91 음악과 꽃을 사랑하는 러시아 사람들 file 이재섭 2007.06.06 2110
90 이 건물의 진짜 주인은? file 이재섭 2011.05.13 3103
89 이국 땅에서 추석을 앞두고- file 러시아천사 2007.09.20 2166
88 이땅에 보냄받은 날을 감사하며 이재섭 2009.07.29 2461
87 이땅에 세워진 한국어학과 위기 file 이재섭 2009.10.10 2260
86 이르쿠츠크 살림살이 file 이재섭 2007.05.04 4182
85 이르쿠츠크 선교지 상황 브리핑 이재섭 2015.01.27 936
84 이르쿠츠크 청과물 도매시장 file 이재섭 2007.10.05 2605
83 이르쿠츠크- 울란바타르 노선 항공 재개 이재섭 2009.05.26 2968
82 이르쿠츠크1번교회 농아인 예배 설교했습니다. file 이재섭 2012.07.24 2425
81 이르쿠츠크의 변화를 꿈꾸며 file 이재섭 2008.02.01 1789
80 이번 주일은 멀리 부랴트 마을을 방문해 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이재섭 2010.05.23 2968
79 이상 고온에 시달리는 러시아 file 이재섭 2007.05.30 2630
78 이성의 판단 기준과 성경 이재섭 2014.08.18 892
77 이웃 도시를 다녀왔습니다. file 러시아천사 2007.04.30 3807
76 이찬미 생일을 함께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file 이재섭 2009.04.17 3219
75 인질 석방 소식에 모든 국민과 더불어 감사드립니다 이재섭 2007.08.31 1813
74 일어나라, 빛을 발하여라 file 이재섭 2012.09.13 2235
73 임마누엘 file 이재섭 2010.09.08 2464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 18 Next
/ 18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