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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간 한글 성서 번역에 헌신한 게일 선교사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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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이 어떻겠소?”
“막연하오. 절대자 야훼가 지닌 유일신 개념을 담아야 하오.”
“한국의 토착신과 혼동되면 안 되고요.”

네 명의 선교사와 한국인 학자들이 히브리어 원전 성경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야훼’를 뭐라고 번역해야 한단 말인가. 담론과 논쟁이 이어졌다. 초대 번역위원장 언더우드가 나섰다. “상제(上帝)나 천주(天主)가 좋을 듯하오.”

“그보다는 한국인들이 모시는 하늘에 존칭을 붙이면 어떨지요? 종교적인 심성이 깊은 한국인들은 우상이 아닌 무형의 하늘을 떠받드니까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게일이었다. 그는 한국인들이 우주의 주재자로서의 하늘을 모시는 심성에 주목했다.

“전능하신 하나님! 어떻습니까? 유교, 불교, 도교와도 친숙하지요.”
그는 국어학자 주시경의 연구에 근거하여 하에 님을 붙이고 다시 유일신이라는 의미까지 담아 하님, 하나님이라는 칭호에 도달한다.

“좋습니다. 하나님으로 합시다!”
결국 언더우드가 이 칭호를 수용하면서 논쟁은 종결되었다.
게일(Gale·한국 이름 奇一·1863~1936사진)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이었던 선교사다. 『구운몽』 『춘향전』을 영어로 번역해 서양에 소개했고 한국 최초로 『한영자전』을 출판했으며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한글로 번역했다.

그는 한국인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살았으며 한국인의 얼을 지닌 참으로 기이한 선교사였다. 본명보다 한국 이름 기일로 불리기를 원했다.

게일은 1893년부터 언더우드·아펜젤러·스크랜턴 박사와 함께 성서 번역위원으로 31년간 봉사했다. 그동안 그는 히브리어 원전 신약성경의 대부분과 구약성경의 상당량을 번역했다.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한글판 성경이 급속도로 대중화되는 데 결정적인 동인이 되었다. 게일은 1911년 『성경전서』 출판기념사에서 하나님 칭호 문제의 중요성을 되짚고 있다. 한글판 성경은 한글을 명실상부한 국민문자로 일반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것은 신앙을 떠나 문맹 퇴치와 개화의 차원에서 평가해야 할 공적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한글은 중인과 사대부가의 아녀자들이 쓰는 문자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게일은 1905년 서울 종로 연동교회에 부임해 27년간 목회했다. 그가 추대한 초대 장로 고찬익은 갖바치 천민 출신이었다. 광대 출신 임공진을 장로로 세우고 양산도 가락에 마태복음 내용을 가사로 붙여 부른 찬송가 이야기는 게일의 ‘열린 사고’를 예증한다.

독립협회 간부들이 감옥에 들어가자, 게일은 옥중학교와 도서실을 운영해 그들을 감화시킨다. 월남 이상재를 비롯한 수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연동교회 성도가 되었고 이승만은 기독교로 개종한다. 이승만은 게일이 써준 소개장을 갖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제중원 의사 알렌이 ‘한국인을 미국에 유학 보내지 말라’는 선교지침에 따라 소개장을 거절한 뒤였다. 그러나 게일은 지침을 무시하고 인재 양성에 뜻을 뒀다. 함석헌의 스승이자 진리의 사람이라고 추앙받는 다석 유영모 선생도 아버지 유명근과 함께 연동교회에 다니며 게일의 영향을 받았다.

1892년 게일은 해리엇 여사와 결혼한다. 게일이 부산 선교를 하던 시절 그를 찾아와 서울로 불러 올렸던 제중원 의사 헤론의 미망인이 바로 해리엇 여사다. 당시 헤론의 집에 기숙했던 29세 청년 게일은 세 살이나 위인 미망인과 두 자매를 식구로 맞아들였다. 해리엇은 1908년 결핵으로 사망한다. 게일은 사랑했던 아내 해리엇을 첫 남편 헤론 옆에 안장해주는 끈끈한 우정을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재혼한 아내 에이더 세일이 낳은 아들 비비언이 영아 때 죽자, 헤론과 해리엇 묘역에 묻는다. 게일의 따뜻한 심성과 가족관을 엿보게 하는 장면이다.

게일은 고려시대의 위대한 문인 이규보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그의 시를 영어로 번역하고 강화도에 있는 무덤을 찾아갈 정도였다.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와 서구 기독교 문명의 조화와 통섭을 꾀했던 그는 한국인의 정신 세계를 서양에 번역해준 개화기 최고의 문인이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유영식(65) 교수는 올해 『게일평전』을 출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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