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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의 고려인 할머니    이 재 섭mrussia@hanmail.net


우리 가족은 1998년 가을부터 약 2년 동안 카자흐스탄 남부 도시인 침켄트에 살았다. 세 얻은 아파트 아래층에 80대 중반의 고려인 할머니가 손자 가족과 살고 있었다.
1937년 스탈린 강제 이주 정책 당시 할머니는 16살이었다고 한다. 할머니 가족은 영문도 모른 채 화물칸에 실려 긴 여행을 떠났다. 여러 날에 걸쳐 도착한 곳이 카자흐스탄이었다. 이동하는 동안, 또 그곳에 정착하는 동안에 숱한 사람들이 죽거나 병이 들었다. 카자흐스탄의 첫 도착지는 알마타에서 좀 떨어진 우스토베란 곳이었다. 얼마 후우즈베키스탄에도 많은 고려인들이 정착했다. 그러나 당국에서 이주할 집을 사전에 지어놓은 것도 아니고 식량 배급도 제대로 해주지 않은 채여서 사람들은 당장 잠자리와 식량 문제가 심각했다. 드물게 친절한 현지인들을 만나 숙소를 제공받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땅을 파고 토굴에서 생활해야 했다.

할머니는 이러한 애환을 안은 채 카자흐스탄을 제2의 고향삼아 정착했고 이제 3대에 이르는 후손을 두었다. 우리가 그곳으로 간 지 얼마 뒤에 모스크바에서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던 할머니의 아들네가 이주해왔다. 할머니 가족은, 육십을 넘은 할머니의 아들조차도 모두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고려인들도 있지만 할머니 후손처럼 온 가족이 러시아어에 익숙한 집안이 대부분이다.
어쨌든 할머니가 그곳에 정착한 지 60년이 지났다. 첫째 증손녀가 할머니가 이주해올 때 나이인 16살이 되었다. 할머니의 뜻에 따른 듯 증손녀와 증손자들은 조선어(한글)를 배울 수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는 것은 신기했지만 일주일에 두 시간 남짓 배우는 한국어 수업이 과연 민족혼을 일깨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고려인 선생님이 가르치는데 북한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로 수업한다고 했다. 우리 정부에서도 저들에게 제대로 된 우리말 교과서를 제공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아파트 1층 창문을 열고 마당에서 놀고 있는 증손녀들에게 소리쳤다.
“야 이놈들아, 조선말로 말해라.”
나는 그 소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할머니는 러시아어로 재잘거리는 증손녀들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러시아어로 말을 배웠고 러시아어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저들에겐 한국어가 이미 제2 외국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언어가 곧 정신이다. 한국인의 핏줄을 잇고 있지만 그들은 이미 러시아어에 의해서 러시아인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할머니는 그러한 핏줄의 상실이 애달프고 두려운 듯했다.

우리가 할머니 이웃에 살고 있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상중에 할머니의 아들이 무얼 들고 우리집을 찾아왔다. 붉은 색 관보와 치약이었다. 그는 한국어가 매우 서툴렀다. 우리 아이가 통역을 해줬다. “어머니(할머니)가 평소 한국어를 좋아하신 만큼 관 위에 덮는 천(관보)에 한글로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청이었다. 물감을 사기 힘든 나라여서인지 치약을 짜서 글을 쓴다고 했다. 나는 집에 있는 하얀 물감을 모두 동원해서 글을 써주고는 치약은 물이 닿으면 금방 지워지는데 물감을 사용했으니 오래 갈 거라고 말했다. 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했다.
할머니는 한국어가 쓰인 관보를 덮고 먼 길을 떠나셨다. 그러나 그 분의 후손들은 그 글씨의 뜻을 잘 모른 채 할머니를 배웅했을 것이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한국인의 후예들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더라도 조선말(한국어)을 잘 구사하면서 우리의 정신을 이어가길 바라는 할머니 같은 분은 세계 도처에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염원을 그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방인의 공허한 소망으로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 것일까. 근원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는 없는 것일까.

2016 에세이스트 연간집 수록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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