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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는 꼭 선교사가 되고 싶었던 고위경 장로(60). 그는 세칭 일류대를 나와 중소기업을 경영하던 사업가였다. 그는 막연하게 은퇴 후 쯤 선교사의 꿈을 현실로 이뤄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생각했던 때보다 일찍 그를 선교현장으로 내 몰았다. 7년 전 남서울은혜교회(홍정길 목사) 연해주선교위원회 초대위원장으로 선임된 후 연해주 고려인 정착촌의 비참한 실상을 목격하면서 그는 스스로에게 되묻기 시작했다.

“사업가로서의 삶을 잘 마무리한 후 노년에 이르러 선교사로 변신하겠다는 생각은 무척 사치스러운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일을 마치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양념으로 삼는 것은 아닌가"
이 같은 내적 소명의식을 더욱 확실하게 일깨워준 사건은 또 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 온 돌발성 난청으로 오른쪽 청력을 상실하게 된 것. 그는 이 돌연한 불행을 하나님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선교사의 길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마침내 부인 이희선 권사(57)에게 속내를 털어놨다. 사실 가장 우려했던 것은 부인의 반대였다. 이화여대 종교음악과에서 오르간을 전공한 이 권사는 당시 새문안교회에서 설립한 언더우드 기념 교회음악교육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오르간을 가르치는 것을 하나님께 받은 소명으로 생각하는 부인에게 남편의 제의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인은 물론 자녀들까지 이 장로의 생각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고위경 장로와 이희선 권사는 2001년 5월 GPTI(한국전문인선교훈련원)에서 1년 동안 선교사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기업인과 오르간니스트로 살았던 이 부부는 이렇게 연해주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평신도 부부 선교사로 거듭났다.

1억 가까운 연수입을 안겨주던 사업체와 직장을 포기한 것은 물론 경기도 죽전의 67평 아파트를 포함한 모든 재산도 아낌없이 정리했다. 고 선교사 부부는 한국에서는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었다.

“이 시기에 모친께서도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국에 있는 모든 것을 버리시게 만들더군요. 이제 우리 부부는 연해주를 고향으로 삼았습니다.”

고 선교사가 속했던 연해주선교위원회는 초기에 주로 농업과 교육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비닐하우스를 통한 농업기술을 전수해주었으며, 러시아 정부의 허가를 받아 건물을 구입해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연해주선교위원회는 후에 외교통상부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얻어 원동문화개발기구라는 종합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NGO로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동분서주하며 활동했던 고 선교사 부부는 2002년 경 수준 높은 예술성을 보유한 러시아 인들에게 효과적인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톡 문화교류센터’를 설립하고 문화선교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러시아 국민들에게 문화예술이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가지고 접근할 때 서로 간에 손쉽게 사랑의 다리를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화선교를 통해서 선교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장기적인 복음전파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동문화개발기구 이사장 홍정길 목사도 고 선교사 부부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홍 목사는 “한국의 수준 높은 크리스천 연주인들을 활용한다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러시아 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는 것은 물론 선교와 외교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희선 선교사의 음악적 달란트는 문화선교 분야에서 크게 빛을 발했다. 이 선교사가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하면서 가져간 연습용 오르간이 러시아 인들의 심금을 울리기 시작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2003년 9월의 첫 연주회가 블라디보스톡 푸시킨 극장에서 무려 6회에 걸쳐 앵콜 공연을 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공연을 마친 후 이 선교사는 어느 청중으로부터 시가 담긴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오늘 나는 하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남자들은 술을 끊고
여자는 자녀를 돌봐야 합니다.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이 편지 내용은 고 선교사 부부의 문화를 통한 선교가 왜 필요한지를 확실하게 일깨워줬다. 오르간연주회와 더불어 국내 여러 합창단과 성악가, 연주인들이 고 선교사 부부를 통해 블라디보스톡에 소개되기 시작해, 지난해까지 크고작은 21회의 음악회가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수준 높은 예술성은 ‘밥은 굶어도 음악회 표는 산다’는 러시아 인들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러시아정교회로부터 이단처럼 여기고 있는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누그러뜨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고 선교사 부부는 이제 한지공예 등 전통문화를 소개하거나 건축과 인테리어 분야까지 양국의 문화교류 영역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고 선교사 부부는 지난 3월 초 고려인 여성을 며느리로 맞아 들였다. 러시아에 유학 중인 아들 고명호 씨(29)의 결혼식은 모스크바에서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열렸다. 부모의 입장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주지 못한 아쉬움 보다 선교사답게 아들 결혼식을 치렀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블라디보스톡의 러시아인 및 고려인과 하나님의 관계를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있는 고위경 이희선 선교사. 이 부부 선교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선율처럼 우리들의 영혼을 맑게 해주는 값진 삶을 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승균기자 2006년 03월 19일

http://blog.naver.com/sayjesus/80022781374

[출처] 블라디보스톡에 문화선교 꽃피운 부부선교사 |작성자 예수뿐

고위경 이희선 선교사 부부가 6월말 이르쿠츠크를 방문할 예정이다.
뜻깊은 만남이 되리라 믿는다. 환영합니다! 선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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