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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엽 목사
며칠 전 한 지인으로부터 문자 메시지 한통을 받았다.

“역사벽보시, 5월 21일 11시 가평역에서 오픈식이 있음. 많은 참석 바람”. 문자를 보고 “응, 무슨 보시에 참석하라고” 보시는 불교에서 남을 도울 때 사용하는 용어가 아닌가? “목사가 무슨 불교 행사에 간단 말인가?” 잘못된 메시지로 생각하고 잃어버렸는데, 동료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일 행사에 함께 갑시다” “아, 목사님! 그 행사 불교행사 아닙니까? 저는 못가겠는데요”

“목사님! 잘못 아신 거예요. 불교행사가 아니고, 가평역 벽보에 게시한 시낭송회 행사입니다.”

그렇다. 문자 메시지가 띄어쓰기가 잘 못 되다보니 해석을 잘 못한 것이다. 순간 무지함이 드러난 것 같아 동료 목사에게 미안하고 얼굴까지 화끈거렸다.

목회자들은 어느 면에서 폐쇄된 삶을 산다. 성직이라는 직분이 세상과는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직자는 세상과 교감하고 파고들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목회자는 세상의 모든 생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삶이 어렵고 힘든 원인 중 하나다.

요즘 한국교회의 최대 이슈는 교회성장이다. 본래 교회성장은 균형 있는 교회의 부흥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교회당의 규모와 교인의 숫자에 의해 평가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회사역도 경쟁시대가 돼 버렸다.

근래 신학을 하고 목사 신분이지만 택시운전이나 막노동 같은 다른 길을 가는 목사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목회지를 찾지 못했거나 목회에 회의를 품고 목회의 뜻을 접거나 미루고 생활전선으로 뛰어 든 것이다. 그들 역시 목회에 뜻을 품고 신학교를 다니던 때가 있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평생에 걸쳐 수행해 보겠다는 신념이 충만한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신념은 삶의 고달픔과 목회현장에서의 실망으로 접거나 보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필자 역시 개척교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이상과 현실이 다른 상황 속에서도 한 목회자의 질고와 자녀의 큰 고통을 치료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게 되었다. 길르앗에 찾아온 3년 반의 가뭄으로 생존이 위협받던 열악한 환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던 엘리야 선지자의 사역에서 목회의 의미를 깨달았다.

목회자 역시 사람이고 안정된 삶을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목회자를 특별히 아끼고 보호하지만 시련과 인내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뤄간다.

요즘 한국사회와 교계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기총의 갈등에 세상의 눈총이 뜨겁고 일부 교회에서 터진 불미스런 일들이 한국교회의 위상을 심각하게 실추시키면서 일각에서는 5% 이상의 교인들이 감소했다는 추산을 내놓기도 한다. 실제로 아무런 문제없이 목회에 충실한 교회들도 교인이 줄거나 예전처럼 새신자가 늘지 않는다고 한다.

때론 일선에서 열악한 환경 가운데 애써서 전도하고 목양을 하지만 가끔 터지는 대형 사고들 때문에 전도의 길이 막힌다는 생각에 야속할 때도 있다. 그러나 교회는 고난 가운데 성장하고 순수해져 왔음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런 때일수록 주위의 비난의 소리에 아랑곳하지 말고 묵묵히 목양일념의 길을 걸어가자.

항상 그랬지만 지금 세상의 환경이 목회자들에게 힘든 시기다. 그런 때 일수록 초심을 회복하고 인내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갈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갈구하는 자의 본심을 보고 긍휼을 내리신다.

2011년 05월 24일 (화) 19:14:00 기독신문 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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