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성령의 능력의 연관성 고찰

by 이재섭 posted Mar 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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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와 성령의 능력의 연관성 고찰 


1. 서론

A. 문제 제기

  아시아 지역에서의 선교현황을 보면 구교의 선교사들은  거의 500년에 걸쳐 일해왔고, 신교 선교사들도 아시아 선교를 해온 지 250년이 지난 오늘날의 이 대륙의  인구 중 약 3% 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통계가 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신앙고백하는 사람이 모두 포함되는데, 이렇게  적은 결실의 요인은 무엇일까?

  선교사들의  자국문화  우월주의(Ethnocentrism),  교회와    선교회(Para-Church)의 협력문제, 선교지에서의 선교사들의  연합사역의  부조화,선교지 자국민의 지도자 양성부족, 선교사들의 훈련부족으로  인한  문화충격, 선교의 전략과 정책의 부족, 선교사 파송의 고른 지역적 분포의  미흡,인적-경제적 자원의 부족, 선교개념 정립의 혼란 등 다양한 많은 요인을 찾을 수 있겠다. 그런데 중국에서 선교사로 25년 동안 사역하고,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선교학 교수로 오랫동안 강의하셨던 저명한 선교학자 허버트 케인(Hubert Kane)은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우리의 영적 능력이  부족하다" 는데 있다고 설파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 복음화에 관한 주님의 지상 대위임령에  순종하고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많은 선교정책과 전략과 또 계획을  수립하고 인재를 양성하고 재정을  투자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해 왔다.  그러나 정작 선교의 제 1 동인이 되시는 성령과 선교와의 연관성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였고, 이 둘을 분리한 맹점을 보여왔다.

  전 시대의 선교 정책가인 로버트 글로버(Robert H.Glover)는 "선교는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지도력에 의해 수행되는 하나님의 일이다"  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성령께서는 기독교 선교라는 군사작전의 총사령관으로 오셨으며, 그가 오심으로 해서 기독교  선교의 모든 측면에서 신적인 특성이 부여 되었다"  고 말했다. 그리고  보어(Harry Boer)도 "선교사역은 대위임령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와 능력에 두고 있다"  고 한 주장은 '성령이 선교의 제 1동인(動因)' 이 되심을 역설하는 말이다.

  우리는 성령이 교회의 사역 즉, 선교에 끼치는 결정적이고도 본질적인 역할을  오랫동안 중요시 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죤  스코그런드(John  E. Skoglund)는 [완전한 창조를 위하여] (To the Whole Creation)라는  저서에서 세계선교에 있어서의 성령의 역할에 대한 장(chapter) 을 마련해 놓았는데, 그 장의 제목을 "잊혀진 분"으로 붙였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성령이교회와 선교사역에 끼치는 역할에  대한 인식의 정도를 단적으로 잘 드러내준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중세시대를 지나 인간의 이성이 만물의 척도로 왕좌를 차지한 계몽주의의영향의 결과로 인해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물론과 합리주의가 서구 지성세계를 지배하는  세력이 되었고, 이것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신학적 자유주의의 절정을 이루었으며, 20세기에 와서는 결과적으로 현대과학의 원리를서구사회에 지배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정신적 원리로 인정하는  단계까지이르렀다.  따라서 서구사회는 영적인 실재나 초자연적인 분야나 성령의 능력에 관해서 무지하거나 극히 제한된 세계관에 지배되게 되었고,  이  양상은 주님의 지상명령인 세계 복음화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한 선교 열매의 극대화의 측면에서 제한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바야흐로 오늘날 세계인구는  52억에 이른다.  이 가운데 17억 정도는 어떤 형태로든 -카톨릭,정교,신교- 기독교 신앙과 접해 있다.  그 외  35억은비기독교 인구이다.  데이빗 바렛은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세계인구의 36% 이상인 것으로 추정한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해 볼 때,  세계복음화를 위한 주님의 지상명령( The Great Commission)의  과업을  시급히완수해야 한다.  따라서 이 일의 효율성의 차원에서 선교와 성령의  능력의역할, 그리고 인격을  충분히 업이 긴급히 요구된다고 본다.

  따라서 본 논문은 선교에 있어서 성령이 선교의 제 1 동인이며, 원동력이고 선교를 주도하며 선교를 감독하고 있다는 것을 신.구약성서의  기초위에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선교사(史) 속에서 선교와 성령과의  상호긴밀한 병행 관계와 연관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의  선교현장(Context)에서의 성령의 능력전도의 정체성(Identity)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B.연구방법과 범위와 내용

  성령에 관한 제문제의 이해와 고찰은 '뜨거운 감자'( hot potato)로 불리워질 정도로 많은 논란을 야기시켜 왔다. 이로인해 선교와  성령의  능력의연관성에 대한 정돈된, 전반적인 제문제에 대한 통찰을 위한 작업이 계속적으로 강조되고 연구되어야 한다고 본다

  본 논문은 이에 대한 노력의 일환으로 먼저  장에서 신.구약 성서  속에서의 선교의 제 1 동인으로서의 성령의 위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신.구약 속에서의 선교적 성격 -원심적(centrifugal), 구심적(centripe-tal)- 을 고찰해 봄으로써 신.구약성서는 선교적인 책이며,또한 성서속에서나타난 선교 역사속에서 성령은 선교의 제 1 동인이 됨을 검토하고자 한다.

    장에서는 초대교회 때 부터 현대 선교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전통속에서 성령이 주도적으로 선교의 역사를 이끌어왔고, 원동력이 되어  왔음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성서속에서의  이론이 선교史 내의 현장(context) 속에서의 실재와 일치함을 보이는  것이  된다.

    장에서는 오늘날의 선교현장에서의 성령의 능력사역의  타당성에  대한바람직한 방향성과 초자연적인 기독교 세계관에 관해서  살펴보고자  하며,이를 위한 일환으로 하나님 나라의 개념에 대한 현재적,  미래적인  실재의이해(already, not yet)를 통해, 선교는 성령의 사역의  말세적  가능성과선교현장에서의 성령의 사역으로서의 종말적 성격을 증거함을 보이고자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현재도 성령의 능력의 사역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의 바른 위치를 살펴봄 으로써 오늘날의 선교 현장속에서의 성령의  능력의역동적인 역사에 대한 올바른 세계관과  신학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선교의 제 1 동인으로서의 성령: 성서적 기초

  A. 성서에서의 선교적 성격

    1. 구약에서의 선교적 성격

  성서학자들 중에는 구약 성서를 통하여 선교의 목적과 메시지, 그리고 선교 활동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에,  이러한  것들을구약 성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선교"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내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부라워(J.Blauw)는 선교를 구심적 선교(Centripetal Mission)와 원심적 선교(Centrifugal Mission)로 분류했는데,신약에서 그것이 전경에 나타나는 원심적 의미로써의 선교적 성격은 구약에서는 구분을 지어야 하는 것이 바르다고 했다.

  그는 구약의 시기동안 아무도 다른 이방나라들에게로 선포를 위하여  나아가는 행동(Act)으로서 선교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이스라엘의 고대와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나라들, 즉 이방에  대한강렬한(Fortiori) 이스라엘의 말세적 고대는 이스라엘의 미래의 행동에  근거되지 않고, 여호와의 미래의 행동에 근거된다고 했다.

  다른 말로 하면, 구약에 있어서 말세론은 복음을 설교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에게 나아가는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선교에 관심을 둠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선교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모든 나라들이 하나의  관찰과 함께 알게 끔, 가시적으로 명백하게 만들것이라는 사실에서 성립한다.
이 점에서 허버트 케인은 "이스라엘 민족의 현존자체가 수동적인  방식으로의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고 말했다.  뱅케트  순드클러(Bengt Sundkler)도 더욱 앞서서 이스라엘의 선교적 의미의 특별한  형태로서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확신을 불러 일으켰었다.

  더 나아가서 죠지 피터스는 구약 성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속성과 이스라엘 민족의 현존 자체가 하나님의 선교 였다고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이 세상에 보내신 "세계내의 존재 (Presence in the world)"로 모든 이방들이 이스라엘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신 존재였다.  창세기 1-2장의 천지  창조와  아담과  하와의  창조,창세기  3장  15절의  원시복음(Peotevangelism),노아와의 계약(창6장), 그리고 바벧탑 건설에 간섭하시는하나님(창11장),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창12장)에는 인간의 구원과 안전과 생존과 복지에 대한 하나님의 지대한 관심이 나타나 있다.

  구약 성서에서 선교를 강조하는 또 다른 사건으로는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창18장), 애굽에서의 요셉의 영향력(창42-47장),출애굽 사건에서의 모세의 역할(출1-12장),유대인 대학살을 목전에 둔 모르드개의 역할(에1-10장), 바벧론과 페르시아 왕궁에서의 다니엘의  삶(단  1-6장), 포로 귀환에 대한 느헤미야의 관심(느 1-6장), 요나의 니느웨  사역과이사야 등 많은  선지자들의 사역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한 하나님의 선교적 역할로써 구약  성서전반에  걸쳐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보편주의'(universality)적  성격이 가득 차 있는데 하나님은  이를  위해서  특수적(Particular)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이  "땅끝까지이르게"(사49:6)하기 위하여 "이방의 빛"(사42:6)이 되어야 했다.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의 선교를 포로이전, 포로시대로 나누어서 고찰해 보면,
  (1) 포로이전 선교활동은 구심적인(centripetal)  것으로써,  이스라엘이열국들에게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이스라엘에게로 나아왔다.
포로이전 이스라엘의 선교적 활동은 다음 3단계로 나눌수 있다.

  1단계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회중에 드는 것이 허용되었다.이스라엘자손이 애굽에서 나올때 "중다한  잡족이  그들  무리에  가입했었다.  (출12:38) 솔로몬 시대에는 이방인들의 수가 153,600 명에 달하고 있었다. (대하2:7) 룻기는 이러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회중에 동화되는  과정을  그린아름다운 실례이다.

  2단계로 모든 나라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로 불려 오는 것을  선지자들이 예언했다. 이사야와 다른 예언자들이 본 환상은 이방 나라들이 주님의말씀을 듣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장면을 그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선교적인 역할에 있어 마지막이자 세번째 단계는 유일하신 참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세계에 편만한 단계이다.

  (2) 포로시대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은 원심적(centrifugal)인 성격으로점점 변모하게 되었다. 역사상 최초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들로부터  개종자를 얻는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종종  유대인들은 헬라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그들의 예배 의식에  유인하려고  애를썼다고 한다.

  개종자에는  두가지  부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철두철미한  개종자(proselyte), 또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자(God - fearer)였다.  이처럼구약성서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하나님의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관심이 충만히 내재해 있는 선교적인 전망을 띤 책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현존자체를 통해 수동적인 방식으로의 온 이방인들을 향한 선교를계획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 - 사랑, 거룩 - 에 기초한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요청인  것이다.  따라서  구심적인  (Cen-tripetal) 선교적 성격을 구약성서는 계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구약성서는 선교적인 책이며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를 두고 온  인류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는    보편주의(Universality)의 성격에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하겠다.

  A. 성서에서의 선교적 성격

  2. 신약에서의 선교적 성격.

  신약성경은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에 알리는 선교의 책이다. 신약의  4복음서는 선교적 설교의 산 기록이며, 사도행전은 선교적  교회의  모델이며,바울의 서신서는 복음을 철학적으로 변호하는 변증서가 아니라, 선교의  기록이다.

(1)복음서의 선교.

  선교의 사명이 대사명에 한정되었다는 것은 잘못이다. 선교의 사명은  성육신에 앞서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속성에 근거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선교적인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성육신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성육신으로 신약 선교는 시작된다. 성육신의 목적은  유대민족만이  아니라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아라비아에서 오랫동안 사역하였으며, 사십년동안 이슬람 세계에 관한 책을 편집했고, 이슬람의 사도라고 불리워지기도 했던 미국의 선교사  사무엘즈웸머(Samuel Zwemer)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선교에 대한 논쟁들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4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헤겔(Hegel),톨스토이(Tolstoi)등이 주장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반유대주의(anti-semitic)였으며 단지 세계선교에 대해서 의식만 하였다는 극단적인 관점이다.

두번째로 예수는 유대나 이스라엘의 집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관점으로  레이마러스(Reimarus), 스트라우스(Strauss), 벧하우젠(Wellhansen),  하르냐(Harnack)등이 대표적으로 이 학설을 따른다.

세번째 학설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 초기에는  유대인들에게  한정된사역이었으나, 공생애의 말기에 가서야 그는 세계선교에 대해서 의식했다는것이다. 이 학설의 대표 학자로는 케임(Keim), 하우스라트(Hansrath), 버토렛(Bertholet), 버나드 바이스(Bernard Weiss)등이다.

즈웸머(Zwemer)는 모든 위의 자유주의적인 (radical) 관점들을 반대로  해서 전통적인 관점(traditional view)을 제시했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초기공생애 사역이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집에 한정되긴 했으나,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 자신이 모든 인류의 구세주임을  가르쳤고,  마침내그들에게 보편적 선교(universal mission)를 명했다고 주장했는데, 이 관점은 개신교(protestant)나 로마 카톨릭(Roman Catolics)등의 대부분이  따른다고 주장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편협한 이스라엘의 민족중심주의에서 벗어나면서 점진적으로 세계를 구원코자 하는 보편화로 진화했다는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다시 들을 수 없게 되었는데, 예레미아스(J.Jeremias),  한(F.Hahn), 그리고 부라워(J.Blauw)와 같은 사람들은 각기 의견의 차이를  전제하면서도 예수의 이스라엘을 위한 활동이 곧 세계를 위한 활동인 것을 인정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4복음서 내에서 예수의 선교적 명령(Missionary Mandate)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살펴보면, 첫째로 요한복음 20장 19-23절 에서 '위임된 권위'를 주제로 보여주고 있고, 둘째로 누가복음24장 44절-49절까지에서 선교의  메시지는 '회개와 죄 용서'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로 마가복음16장15절-20절에서 '선교의 신적능력(Divine Power of mission)'을 보여주고 있다.

넷째로 마태복음28장 16-20절 까지에서 '선교적 과제(Tesk)가  모든  족속(Panta ta ethne)으로 제자 삼는것(matheteusate)' 임을  분명히  보여주고있다.

  이상 복음서의 몇 구절을 통해서 만이라도, 하르낙(Adolf Von Harnack)이주장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활동이 유대인들에게 국한되었으며, 이방인에대한 공식적인 전도는 전혀 예수님의 의도 밖에 있었다"  는 것이 전혀  부당함을 입증해 보일 수 있다.

(2) 사도행전과 선교.

  사도행전은 성경 중에서 선교에 관한 가장  중요한  책이다.  사도행전은"하나님의 교회가 승리하는 과정"을 기술하였거니와,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을 잘 알려주는 선교의 책으로 사도행전이 없으면, 바울의 서신도 잘  이해될수 없다.

  사도행전은 신약성서에서 전략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책에서핵심적인 귀절은 <행1:8>이며, 누가는 이 귀절을 중심으로  해서  사도행전전체를 구성했던 것이 확실하다.

  스코로기(Graham Scroggie)는 그의 저서[너의  성경을  알라](Know  yourBible)에서 <행1:8>에서 발견할 수 있는 네가지의 중요한 개념들을  다음과같이 제시하고 있다.

  1) 기독교의 증거는 그리스도를 중심 주제로 한다.
  2) 기독교의 증거는 교회를 유일한 매개체로 한다.
  3) 기독교의 증거는 세상을 궁극적인 장(場)으로 한다.
  4) 기독교의 증거는 성령의 능력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바빙크는 사도행전의 선교활동이 영화로우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사도행전이라고 보기에는 사도들을 통한 그리스도의  행전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이루어진 모든 일이 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로 강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음서에서의 그리스도의 선교사역과 그  의미가중단되지 않고 사도들에 의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속되었음을 의미한다.

  사도행전의 선교에 대한 명령이 구체적으로 그 실천에 옮겨지기 까지에는4단계의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 첫째는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행2장)와  예루살렘교회의 급성장, 둘째는 스데반의 순교와 핍박과  희랍계  유대교회의신자(Hellenistic Jewish Believers)의 피난, 셋째는  바울의  회심(행9장)그리고 넷째는 고넬료 가정의 회심과 세례(행10장)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방선교의  열쇠는  안디옥  교회의  설립(해11장)과  사도  선교단(Apostolic band)의 파송(행13장)이었다.

  B. 구약에 나타난 선교와 성령.

  성령에 대한 구약에서의 언급은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  또는'주의 영(the spirit of the Lord)'으로 86번 묘사되어졌다.  히브리  말로성령은 '루아흐(ruach)'이고, 이것은 '호흡(breath)'과 '바람(wind)'으로도말해지고, '사람의 영'을 말할때도 쓰여진다. '하나님의 영(the  sprit  ofGod)'의 묘사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전능, 엄위를  일케고,  '주의  영(the sprit of the Lord)'은 구속자 하나님의 사랑, 은혜와 도우심을  일컬을때 사용된다.

  창조계에서 성령이 맡은 역할은 하나님의 영이 혼돈 속에서 질서를  이끌어 내는 운행에 대한 창조 기사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창1:2)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위에 운행하신 것은  천지창조에 3위 하나님으로 동참하신 것이 된다.

  그래서 허버트 케인은 성령은 끝까지 사람과 그의 구원에 관계되어  있으며, 그 사실이 성령이 선교에 관계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창세기  1장1절부터의 말씀이 바로 선교의 기초(Ground)가 되며 이것은 바로 이 세상이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윌리암 그레이트 하우스(William M. Greathouse)는 성령에 관한 구약성서의 언급을 3가지 영역으로 나누었다.

첫째는 일반적으로 세계(Cosmos)속에서의 성령의 활동에 관계하는 것을 다루었다. (창1:2, 시33:6, 욥27:3,시104:30, 창6:3,  창41:8,  출35:30,  삿3:10, 시139:10) 그레이트 하우스 박사(Dr. Greathouse)는 언급하기를 그는인격적인 영이시며, 세계를 유지하는 힘(Power)뿐만 아니라, 죄악된 인간의삶속에서의 도덕적 영향력을 미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성령의 구속활동의 영역이다. 이것은 단지영적인 구속에 대한 것 뿐 아니라 종종 억압과 위험으로부터의 해방에 관계되어 활동한다. 사사기에서 사사들의 등장 때와 사울과  다윗이  "위로부터임한(coming upon)" 성령의 활동과 관계있다.(민11:25-26, 삼상19:20, 에스겔2:1-3, 8:1,11:1, 시51:11, 사63:10-11)

셋째는 메시야의 도래에 관한 성령의 예언에 대해서 구약성서는  보여주고있다고했다.(사11:2, 42:1,61:1-2,32:14-15, 44:3,59:19,  에스겔36:25-27,스가랴12:10, 요엘2:28-29).

  성령이 선교적 성격의 차원에서 더욱 뚜렷하게 제시된 경우는 특별히  선지자들로부터 현저히 드러났다. 그런데 선지자들까지도 성령이  집단적으로부어질 것을 예견했는데, 세가지 중요 구절을 실례로 들 수 있다. 첫째  구절은 에스겔 37장이다. 여기에는 계곡에 가득찬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활동으로 살아난다.

이 경우에 성령의 활동은 하나님의 호흡(루아흐)이란 말로 표현되었다. 이광범위한 성령의 역사는 오순절의 집단적인 성령의 부음을 예견한다.  두번째 구절은 이사야 44:3으로써 마른땅에 흐르는 물의 이미지를 통해  성령의회생사역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에만 국한하지 않았기 때문에그 범위가 에스겔 37장의 경우보다 훨씬 더 높다.

세번째 관련 구절은 요엘2:28이다."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베드로는 이 예언이 오순절에 성취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말씀은  특별히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왜냐하면 성령의 엄청난 강림이 사전  준비없이  된일이 아니었음을 증시해 주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오순절이 요엘  선지자가예고한 것의 정확한 성취라고 강조해서 밝혔다.

그리고 에스겔36:26-27에서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지켜 행할지라."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분명히 "새 영" 그리고 "내 신"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온 세계에 말씀을 전파할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점에 대해 바빙크는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계 시대를  예언하고 계심을 알았다. ... 범세계의 구원의 약속이 빛나고 있었으며  심지어 전세계에 구원의 희망이 비치게 되었다. 이 구원의 약속의 실현의  첫째조건은 이스라엘 자체의 진정한 회심이었다." 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이 참된 회심은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역사의 결과인 것이다. 겔36장26,27절과 렘 31장 31절에서 같은 사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새언약을 맺으실 것과 그것을 그들 마음에 기록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선교는 구약성서 속에서 그의 영으로서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회심을 위한 구속의 역사  -  구심적(centripetal) - 뿐만 아니라,온 우주를 창조한 창조사역과 세계의 모든 인류의 구속의 역사를 위한 다양한 예시와 갈등 속에서 성령이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C. 신약에 나타난 선교와 성령의 관계.

  구약에서의 성령의 사역은 예시적이고 은유적이며, 알레고리컬한  표현인데 비하여, 신약에서의 성령의 사역은 너무나 현저하고도  뚜렷하다.  먼저신약성서에서, 특히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 등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속에서, 그리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선교사역속에서 성령이 담당한 역할을 알아보고 성령과 선교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불리울정도로 무려 55회에 걸쳐 성령에 대한 언급이 있다.

1. 복음서에서의 선교와 성령.

  기독교 선교는 선교적인 하나님의 선교이며,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땅에오심으로써 시작된 것이다. 또한 예수의 나심이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으로(마1:8, 눅1:35) 그런 의미에서, 신약의 선교는 성령의 사역으로  시작되고 있다.

  도날드 거쓰리(Donald Guthrie)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서 성령이 담당한 역할의 일곱가지 측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는 세례요한의 말을  통한성령의 약속(눅3:15이하;비교. 마3"11-12; 막1:7-8),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성령의 역할(마1:8, 눅1:35), 성령과  시므온의  예고(눅2:25,2627,32), 성령과 예수님의 세례(마3:16, 막1:10, 눅3:22), 성령과  예수님의시험,(막:12, 마4:1, 눅3:21-4:1), 성령과 예수님의 축귀사역(마12:28,  눅11:20), 성령과 예수님의 공적사역(눅4:14, 마12:28)등을 구분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의 시작부터 모든 영역이 삼위일체 하나님 중 3위이신성령의 역할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게 되는데,  그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 위에 내려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신다.  여기에서는 뚜렷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나시게 된다. 예수님이 세상에서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려 할 때에 성삼위께서 예수의 사역을 인(sealing)치신다.

하늘의 소리에 대한 전주로서 성령이 예수님 위에 비둘기같이  강림했다는언급은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촉구로써 3복음서에 모두 적혀 있다.(마3:16, 막1:10, 눅3:22)  결국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도 성령의  인치심으로 시작되지만, 그에 앞선 세례요한의 작업도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으로 되어질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시므온에게 성령은 임하였으며 (눅2:25), 그가 성령의 인도로 예수님이 이방의 빛과 이스라엘의 영광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눅2:32)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이 보편적이라는 계시와 마리아의 믿음에 칼이  찌르듯할 것이라는 예고에서 성령의 기능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예언적 역할을 뚜렷이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시험(Temptation)을 받기 위하여 광야로 성령에 의해 이끌려 갔고 (마4:1-11, 눅4:1-13), 그는 갈릴리로 성령의 능력으로 돌아와서나사렛 회당에서 공적으로 이사야서 61장의 예언을 읽었다.  "주의  성령이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4:18-19) 광야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는 진술에서 성령의  적극적인 역할이 재차 강조되었다.

그래서 시험들은 세례때에 있었던 메시야적 언급들과 직결되어 있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수행했던 축귀사역은 메시야의 표적들로  간주되었으며, 이것은 성령을 통하여 행해졌다. 예수님은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먼저 악의 왕국을 전복시켜야만 하였다. 축귀사역은 더 강한 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예증하는 성령의 힘찬 계시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권능으로 '(눅4:14) 갈릴리로 돌아와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61:1,2의 성령의약속이 자신에게 성취되었다고 즉시 공적으로 선포함으로서 그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다. (cf.눅4:16절 이하)

더구나 여기서 인용된 이사야 구절은 예수님이 시작한 사역의 성격을 설교(Preaching), 교육(Teaching), 치유(Healing)로 묘사하였다.  여기서 예수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눅 4:18) 하심으로 성령이 그에게 오심으로서 복된 소식을 전파하게 하셨으며, 또한 성령의능력으로 인한 악한 영과의 '능력 대결(Power Encounter)'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성령으로 인한 사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있다. 특히 이 성령의 사역은 공관복음서보다 요한복음에  집중되어  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성령으로 거듭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때 성령은 죄인의 '중생'을 위해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허버트 케인은 오직 성령만이 이방인에게 복음의 진리를  확신시킬수 있고, 인간의 죄성을 확신시킬수 있고, 이교도로  하여금  그릇된길을 버리게 할수 있다  고 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예수께서 다른 보혜사를 약속하고 계신다.오스왈드 샌더스(J.Oswald Sanders)는 여기서 '다른 보혜사'를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보호하고, 그의 사역을 성취하는  '대변자'(Advocate)라고 했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목적하시고, 세우셨으며, 성자 하나님이 이 구원계획을 확증하고,  획득하셨으며, 성령 하나님이 구원의 계획을 실행하고 감독하며, 이 구원계획의 완전한 성취의 근거와 능력이 됨을 주장한  죠지  피터스(G.  Peters)의견해와 일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14:26에서 보혜사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할것을 말씀하셨다. 특히 요한복음 15장26절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증거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속에서 성령이 오심과 그리스도의 증거는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인  '보혜사'(Comforter)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오신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선교사로 만들기 위하여 오셨다.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의 명령(Missionary Mandate) 으로는 마28:16-20, 그리고 막16:15-20, 눅24:44-49, 요20:19-23에 나타나 있다.
  먼저 마28:16-20이 선교개념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첫째 예수님의권위, 둘째 선교수행, 셋째 선교의 궁극적 과제, 넷째 예수님의  약속이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은 먼저 "그러므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사용된 희랍어 "그러므로 가라"(poreuthyntes)는 "출발하다,  떠나다,경계를 넘다"란 뜻을 가진 단어로써 사회적 경계, 인종적 경계, 문화적  경계 그리고 지리적 경계를 넘어가라는 말씀이다.

  이 모든 경계를 넘을 수 있는 것은 대위임령 만으로는 사도들이 이방인들의 선교의 과제를 수행할 수 없었고, 성령의 역사로 가능했다.  그리고  이구절에서 마28:18과 마28:19-20사이의 매우 중요한 상관성을 잘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의 선언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래서 그 나머지 부분은 "그러므로"로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  "권세"(exousia)라는 뜻 외에도 "능력"이라는 말로 자주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매우 중요한데, 그것이 다른 신약성경의 단어에서 나타난  대로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는 뜻의  '듀나미스'(dunamis)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부터  파생된  능력'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엑수시아'(exousia)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마태복음28:18말씀대로 이러한 엑수시아적 능력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것을 그의 제자들에게도 역시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런 엑수시아적 능력은 위로부터 성령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주님의 지상명령의 성취는 성령의 엑수시아적 능력의 사역을 통해서 가능한것이다. 허버트 케인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라"는 말씀에는 주의를  기울였지만, 위로부터 권능을 입을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무르라"는 경고는 완전히무시하여 왔다고 했다. "머무르라"는 이 경고의 말씀은 물론 오순절의 역사적 사건을 가리킨 것이며, 그것은 영원히 한번 뿐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의미상으로 볼 때, 세계선교란 초자연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초자연적인 작전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두번째 주님의 선교명령은 막16:15-20에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라는 말씀은 성령의 능력이  선교사역의 힘의 근원이 되며, 선교사역에 있어서 성령의 능력을 표출할 때 악의 세력이 물러가는 '표적과 기사'(Signs and Wonders)가 나타남을 증거하고  있다.

  세번째 누가복음 24:44-49에서 나오는 주님의 선교명령에는 선교의  메세지가 회개와 죄 용서가 되는데, 선교명령 뒤에 따라오는 "볼찌어다 내가 내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에서는 확실히 복음의  증인의  사명을감당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능력의  보혜사를 덧입기를 원하셨다.  따라서 성령이 오심으로서 교회가  선교를  준비할수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네번째로 요20:19-23에서 주님의 선교의 명령이 나오는데,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실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시고 난후 22절에 계속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선교의 위임된 사역에 있어서의 수행능력을성령이 감당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4복음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명령을 통해서 볼 때, 성령과 선교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알 수 있고, 하나님의 영의 오심은 의심할 여지 없이 선교를  준비케  하기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2. 사도행전에서의 선교와 성령

  [초대교회의 복음전도](Evangelism in the Early  Church)의  저자  그린(Michael Green)은 "복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분명히 예상되지 않은 방법으로 전파되었고 그리고 그가 열어 놓은 문들을 통하여 움직였다" 고 함으로 사도행전에는 선교전략이 거의 없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맥가브란(Donald A.McGavran)은 바울이 안디옥에서 치중해 세계의 큰 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략을 세웠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선교를 위해 전략을 세워야 하느냐? 아니면 아무런 전략없이  성령의 인도만 기다려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해결을  위한전제로 "만일 전략이란 말을 성령의 인도 아래서 개발된 운용법, 성령의 지시와 통제에 복종하는 융통성 있는 운용법(modus  operandi)을  의미한다면바울에게는 전략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그의 전략도 성령의 인도 아래서 개발하고 사용했다.  그러므로  바울선교의 전략도 성령이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연관은 <요20:21>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독교 선교를 출범시키셨고,  사도들에게는그것을 수행할 사명이 부여된 것이다. 그들의 선교는 예수님의 사역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써, 같은 목적으로 계획되고, 같은 능력을 부여받고, 같은 말씀이 위임된 것이다.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구원사를 3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의시대는 구약시대에 해당하는 성부 시대이다. 제2의 시대는  성자의  시대이며,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신 30년간으로 세개의 시대 중 가장 짧은  시대이다. 제3의 시대는 성령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사도행전에 있는  오순절로부터 시작하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날까지  계속될것이다.  이처럼 제 3의 시대 성령은 주도적으로 지상명령의 완수를 위해서선교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허버트 케인은 성령이 50회 이상 언급된 사도행전 속에서 성령의  다양한역할을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서 성령이 복음전파를 위해 다양하게  역사함을제시해 주고 있다. 1장에서 성령은 약속의 영이시다. 2장에서는 말씀의 영,3장에서는 치유의 영, 4장에서는 담대함의 영, 5장에서는 거룩의 영, 6장에서는 지혜의 영, 7장에서는 영광의 영, 8장에서는 전도의 영, 9장에서는 위로의 영, 10장에서는 인도(guidance)의 영이시다. 그리고 28장에 나온 바울의 마지막 말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던 성령을 지칭하고 있다.

  죠지 피터스(George Peters)는 사도행전에서 성령은  세계선교의  시초자(Initiator)요, 동기 부여자(Motivator)요, 감독자(Superintendent)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그는 성령은 고도의 선교 전략가(Strategist)라고 했다.
  그는 사도행전에서의 성령의 역할을 8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성령은 종교적인 경계를 뛰어넘어 복음을 전했다.  성령은  빌립을사마리아로,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바울과 바나바를 더 넓은  선교지역으로이끌었다. 성령은 확실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그의 유일한  사자들을선택했다.

  둘째로 성령은 그의 종들이 어떤곳에서도 큰  능력(Power)과  담대함으로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무장시켰다.

셋째로 성령은 그의 종들로 하여금 크나 큰 장애와 심한 반대와 잔혹한 핍박 속에서도 인내하도록 했다. 성령은 그의 종들로 하여금 순교하기까지 지켰다.

  넷째로 특히 성령은 그의 종들을 선교지역으로 인도했고, 특별한  사역자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지역을 가는 것을 금하기도 했다.

다섯째로 성령은 그의 종들이 심한 긴장과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안내했다.

여섯째로 성령은 복음의 선포, 성도들의 개인적인 삶을 통한 정열적이고도역동적인 증거, 성도들의 헌신, 교회의 끊임없는 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받고자 하는 성도들의 의지, 하나님의 능력있는 증거와 신적인 간섭의 기대등을 통해서 복음을 세계로 확산시키기도 하고, 교회로 하여금 갈보리 십자가에서 못박히시고 다시 승리하심으로 사신 그리스도에 대한 세계속에서의 살아있는 증거가 되도록 했다.

일곱째 성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체적인 몸을 복음화의 위대한 과제안에서 구성했다.

여덟번째로 성령은 교회의 형성과 지교회의 설립과 성장을 위해서  사도들에게 큰 영감으로 메시지를 증거하고, 광범위한 문서를  기록하도록  했다.
이처럼 우리는 사도행전을 '신약성서에서 유일한 역사서' 로 사도행전 전체의 선교역사가 성령으로 시작되어 성령으로 진행되어 갔으며 어떻게 실제적으로 성령이 선교에 역사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바빙크는  사도행전이선교의 기초에 관해 복음서에 많은 것을 부가해 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그리스도께서 계속하여 성령을 부어 주시는 역사  속에서 초대 기독교 교회 안에 거하심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성령이 없었다면 초대교회는 집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빈약한 무리들이  될수 밖에 없었을 것이지만, 초대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세계로  뻗어나갔으며, 그들의 힘이 성령의 역사로 증가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매일같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였다고 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을 섬기고 복음의 증인으로 헌신한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전달하는 것은 모두 성령의 역사인 것을 알  수  있다.
성령의 임재와 능력없이는 그리스도의 일꾼된 자로서 헛수고만 할  뿐이며,그의 모든 최선의 노력들이 처참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주님의 지상명령이 성취되는 것은 힘이나 능으로 되는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되는  것이다. (슥4:6) 따라서 선교활동을 할 때, 어느 누구라도  육체의  능력으로살아가면서 성령의 능력없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일 임을 사도행전의 선교역사 속에서 교훈받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사도바울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이처럼 사도행전에서 선교의 역사의 중점에는 성령이 시초요, 동기부여자요, 주도자로써 자리잡고 있으며,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서 성령은선교의 역사를 역동적으로 이루어 나갔다.  따라서 사도행전 속에서도 선교와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3. 선교사(史)속에서의 성령의 역할.

  거의 2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 교회의 세상을 상대로 한  선교활동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떠나서는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오늘날까지 존속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 교회사 속에서의  전세계적인 선교활동에 있어 성령께서 하시는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었을까? 초대교회, 초기유럽과 중세시대, 종교개혁시대부터 윌리엄 케리,  현대 선교시대 등 4개의 시대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A. 초대교회의 선교와 성령.( -313년)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이 강림하신 오순절 사건 이후 교회는 설립되고, 성령의 역사와 능력으로 새롭게 변화된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와 소수의 무리들은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하였다. (행2장)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당시 쉬운 교통수단을 갖고 있었다. 즉 로마의 훌륭한 도로망은 이들의 복음전파에 편리함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들의  공용어가 당시 고대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통용될 수 있었던 혼합어인 헬라어였다.
따라서 어디를 가든지 복음을 이해시키는데 언어소통의 어려움이 적었다.

그러나, 위의 복음전도의 유리한 점에도 불구하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미첼 그린은 그들의 수가 소수였다는 사실과 그들은 학식이전혀 없던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전해 내려온  고대문화가거의 없었던 점, 그리고 그들의 배후에 전혀 조직을 갖고 있지  않았던  점등을 들었다. 그는 더 나아가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세계에 복음을 전하는데 따랐던 장애물들로 6가지를 들었는데, 인종의 장벽,  계층의  장벽,다원적인 종교의 장벽, 타락한 사회의 장벽, 정치적인 의심의 장벽, 종교에대한 냉소주의의 장벽 등을 말했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선교사역은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스테판  니일(Stephen Neill)은 이러한 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기독교 선교  사역은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써 그것이 시도되었던 일 자체가 놀라운 일이아닐 수 없다."  이런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것이니"(살전1:5)라고 주장한 바울의 말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혁명적인 생활을 하면서 혁명적인 메세지를 증거하였다.

그들의 행동과 말속에 성령의 현존과 능력이 넘쳐났다. 따라서 그들은  신비한 종교와 민족적 우상과 이단과 수많은 장애들을 넘어뜨리고 뛰어  넘은것이다.  제2세기에 접어들면서 교회가 제1세기에 가졌던 그 창조적 긴장감유지는 괄목할 만큼 완화되기는 했으나  모든 선교활동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국가에 의하여 산발적으로 일어났던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는  그들로하여금 자기들은 이 세상에 순례자들로써 그 어디에도 정착 할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게 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령의현존을  의식했다.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는 성령론의 선교적 차원은  '전세계를 무대로 선교활동'을 일으킨 특히 소아시아와 시리아에서 성령의  능력과은사가 넘치는 순례 설교자들의 설교,목회활동에서 잘 표현되었다.  고  했다. 이처럼 초대 기독교인들의 삶이 그 삶의 본보기로서 성령의 능력안에서성도들의 교재, 변화된 성품, 기쁨, 그리고 인내로써 선교적 차원을 나타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의 뒤를 이어 복음을 증거하였다.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였는데, 10대 박해가 이때에 가해졌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인의 피는 복음의 씨앗으로써 뿌려졌는데, 이것은 성령의 강력한 힘이 없이는 불가능했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국교  공인이있게 된다.  유명한 순교자들 가운데는 사도바울, 이그나티우스(Ignatius),폴리캅(Poly Carp), 져스틴 마터(Justin Martyr)등이 있다.

  이 시대 교부들 중 져스틴  마터(Justin  Martryr:100-165),  이레니우스(Irenaens:140-203),터툴리안(Tertulion:170-220),노바티안(Novatian:201-280)등은 그들의 사역에 있어서 성령의 능력의 역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져스틴은 당대의 뛰어난 모든 철학을 연구한 기독교 변증가로써 그의 [두번째 변호](Second Apology)<153년>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  의미,능력에 대해 언급하는 가운데 성령의 능력의 역사로 인한 축사와 치유에 관해 쓰고 있다.

  수많은 귀신들린 사람들이 세계도처에, 그리고당신의 도시에도 있는데,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기독교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마술과 약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치유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음으로 치유하고 있다.
이레니우스(Irenaes:140-203)도 그의 저서 [이단을 대항하여](Against Heresies)에서 성령의 능력안에서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확실하고도 올바르게 귀신을 내어 쫓고 있으며, 악한 영으로부터 깨끗함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에 다니게 된다. ... 더군다나 죽은 사람들을 살리기도 하는데 그들은 그 후 우리와  함께  여러해동안 살았다."  고 말했다.

  이처럼 초대교회와 교부시대에도 성령의 능력의 역사가 선교의 현장과 교회내에서 계속적으로 역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에는 성령의  능력안에서 복음이 애굽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고울,인도, 영국, 독일의  게르만족에게까지 그리고 서쪽으로 스페인으로 편만히 전파되어 나갔다. 허버트  케인은 2세기와 3세기에 복음은 로마제국의 전역에 확산되었고, 3세기가 지나지않아, 제국은 몰락하기 시작하였고, 많은 수의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3세기 말엽에는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가 기독교 신앙의 커다란 요새가 되었고, 동방의 에데사도 기독교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로 인해 당시 기독교인의 숫자는 거의 로마제국의 전체인구의 201에서 101까지를 기록했다.
  3. 선교사(史)속에서의 성령의 역할.

  B. 초기 유럽과 중세 시대의 선교와 성령(313-1517)
  콘스탄틴이 A.D.312년 10월 28일 로마 근처에 있는 밀비안 교량에서 막센티우스(Maxentius)를 이긴 승리로 인해 새로운 시대가  동트기  시작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이라고 하는 곳의 근원은 이 사건에 있었고, 마찬가지로 '기독교 서구' 혹은 '기독교 국가'라는 개념도 여기에서 탐색되었다.

  밀라노 칙령(A.D 313)은 기독교인의 종교 자유를 이방종교가 누리고 있던것과 똑같이 보장하였다. 이 칙령은 다양한 방법으로 점차 기독교를 옹호하는  쪽으로  이끌어  주었는데,이런  과정은  A.D  318년에  디오도시우스(Theodoius)황제가 로마의 주교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에 의해 제시된 정통적 신앙을 로마 제국에서 허용되는 유일한 종교 형태라고 선언하는 데서 그절정에 달한다.

콘스탄티누스 이전에 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던반면에 이제는 교인이 아니면 위험하게 되었다. 교회에 소속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물밀듯이 교회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으나 이것은 진정한 회심의 결과가 아니고, 정략적이었다.

  '콘스탄티누스 전환기'가 가져다 준 가장 중요한 결과의  하나는  교회가순례적 성격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히브리 세계에서  희랍세계로  이주해간 교회는 교회학적으로 희랍화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것의 결과는  교회가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경계선을 가진 또한 정확하게 정의될 수 있는  정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로 인해 운동으로서의 교회는 정통적 형태안에서의 기구화한 교회로 되었고, 그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는  것으로되었다. 미래를 위한 '선교'는 교회 확장만을 의미하게 되었다. 몇 명 남지않은 선교사들은 스스로를 교황이 파송하는 대사들로  생각하였고,  그들의과제는 교회안에서 새 개종자들을 가입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기독교는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어 4세기를  지나면서 400%가 증가되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숫자와 금전적인 면에서는  성장을 했지만, 경건심과 능력을 쇠퇴하고 있었다.  교회 역사의  어느  시기를보더라도 그 어떤 나라에서든지 그 시대의 일반적인 양식, 주교들, 사제들,그리고 평신도들로 구별되는 모든 흐름에 따르지 않았던  신앙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수도원  운동에서 처럼 당시의 교회의 부패에 대해 저항함이 분명했던 적도 또한 없다.

세계가 점차로 교회에 침투되자 스스로 참교회라고 생각했던 자들은  세계를 등지고, 수도자들과 고행자들로서 스스로  격리와  희생으로  살아갔다.
하디(E.R.Hardy)가 주장했듯이 박해시기가 끝나고 난 후에는 수도사가 순수한 기독교인의 증거와 세속적인 것에 대한 항거의  표현으로써  순교자들의자리를 대신하였다고 한 것은 옳다.  500년과 1200년 사이에는 대부분 수도승이었던 기독교 선교사들이 전 유럽을 휩쓸고 다녔다.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쳤으며, 학문과 배움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선교활동에도 중심이 된 수도원을 세웠다. 아일랜드의  선교사들이  영국과대륙에 복음을 전파했다. 머지않아 영국 선교사들은  아일랜드  선교사들과힘을 합해 전 유럽을 개종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들은 곧 다가오는 세계의 종말을 면전에 두고, ' ...가서 ... 모든 족속들을 ... 가르치라'
(Ite,docete,omnes  gentes,  마28:19)는  지상  대위임령(The  GreatCommission)에 이끌려서 또 자기들의 모교회와 친밀한 연결을 가지고, 그들은 세계선교를 위해 떠나갔다.  대표적인 인물들은 패트릭(Patrick),콜룸바(Coumba), 아이단(Aidan),쿠트버트(Cuthbert), 어거스틴(Augustine),보니페이스(Boniface), 안스카르(Anskar),  콜롬바누스(Columbanus),  윌리브로드(Willibrord),  림버트(Limbert),  콘스탄틴(Constantine),  메도니우스(Methodius) 등이다. 독일은 스웨덴에, 영국은 노르웨이에  복음을  전파했다.

  이와 같이 초기 유럽의 선교시대에 성령의 권능에 잡힌자들이 놀라운  선교의 역사를 이룩하였다. 어거스틴도 그의 생애를 마치면서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413-427>을 썼는데, 이 책에서 그는 그의 시대에  선교사역 속에서 일어났던 기적들에 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중세시대(600-1500년)의 암흑기에도 북유럽의 선교가 왕성하고, 수도원 운동과 십자군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때에도 성령은 스페인의  레이몬드  룰(Raymond Lull)이라는 신하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변화시켜  제자의  기쁨을주시고, 십자군 운동이 실패로 끝난 것을 교훈삼아 진정코 이슬람 교도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다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으로 돌에 맞아 순교하게  하셨다.  이처럼 레이몬드 룰(Raymond Lull), 라몬 룰(Ramon Lull), 앗시시의프란시스 처럼 스데반의 성령 충만함이 있는 주의 일꾼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은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시는  것을  중단하지않으셨다.

C.종교개혁 시대에서 윌리엄 케리까지의 선교와
    1517-1792)

  유럽의 개신교 교회가 해외선교에 첫 발을 내 딛는 데에는 거의  200년이걸렸다. 종교개혁의 영적인 힘이 개신교로 하여금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게하리라고 기대했으나, 해외 선교를 위한 시도가 개신교 초기에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는 교회와 국가와의 밀착된 관계, 선교를 위한  준비의  미비함, 교회의 선교적 책임에 관한 왜곡된 관념, 탁월한 선교사들이  교회에서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신학적인 것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이 영적으로는 거인임에 틀림없었으나, 세계선교에 있어서는간과한 점이 있었다. 그들은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은 오직 열 두사도에게만 국한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열 두 사도가 그들이  알고  있던세상의 끝까지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대위임령을 완수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또한 기적의 권능, 독특한 사명, 그리고 절박한 요청이  사도들과  함께사라졌으므로, 다음 세대의 교회는 선교사들을 세상 끝까지 파송할  책임과권위가 없다고 생각했다.

  반개혁주의에서 가장 지도적 인물이었던 벧라민(Bellamin)추기경은 이 점즉, 해외 선교에 대한 침묵과 무활동을 들어 종교개혁주의자들의  이단성을증거하는 결정적인 점으로 삼았다.  하드리안 사라비아(Hardrian  Saravia)나 폰 벧츠(Justinian von Welz)같은 사람들이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치를높이 들었을때, 루터교회 성직자단의 분노를 일으키게 되었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왕국은 사람의 노력으로 증진되거나 유지되는 것이 아니며,  세계선교는 하나님 자신의 일 이라고 가르쳤다.

  이처럼, 당시 개신교 지도자인 루터, 칼빈, 쯔빙글리는 교회정화에  너무치중한 나머지 선교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오히려 구교는 굉장한  세력으로세계를 복음화 해서 북유럽에서 잃은 세력을 신대륙과 타지역에서 만회하고자 했다. 특히 그 중에서 프란시스 사비에르는 진실로 헌신적인 그리스도의


사랑과 감동으로 인도, 일본, 중국까지 선교한 위대한 선교사였다. 그는 단지 10년 동안의 짧고 강렬한 선교활동을 통해 52개국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심었으며, 900마일의 영토를 통하여 전도하였고, 100만명 이상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개신교는 덴마크 - 할레(Danish - Halle) 선교회의 루터파 선교사인 지겐발그(Ziegenbalg)와 플뤼차우(Plutschau) 두 사람이 1705년에 인도에  복음을 가져감으로서 개신교  선교는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스펜서(Jacob Spencer)와 프랑케(August Franke)의 지도하에 시작된 경건주의  운동과 모라비아 형제들을 통해서 선교에 불이 붙었다.

1732년 모라비아 교도들은 버진 군도(Virgin Islands)에 선교사들을  파견함으로써 해외선교를 시작해서 1760년까지 약 225명의 모라비아 선교사들이해외 10개국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선교를 시작하여 처음 20년동안  모라비아 형제단은 지난 200년 동안 영국 국교회와 개신교가 남겼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업적을 남기었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요구되었다.
현대 선교운동을 실제로 강력하게 일으킨 것은 18세기의 부흥의  역사였다.
18세기 '대각성 운동'의 주역이었던 요나단 에드워드와 죠지 휫필드는 말씀선포를 통해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이루시는 부흥의 필요를 역설했다.

그리고 요한 웨슬레도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성령의 사역의  중요성을강조했다.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능력이 성령에  있다고  했다.  웨슬레는1746년 6월 토마스 교회에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나는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적 능력을 행사하시지 않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지않는다 ... 사도시대나 혹은 씨프리안의 시대, 또는 어느 시대에만  그러한일이 있었다고 제한하는 성서를 알지 못한다."

  오직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는 초대교회 이후 계속적으로 주님의 지상명령의 완수를 위해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에 차디찬  정통주의에서사람들을 돌이키고, 뜨거운 선교의 열정의 마음으로 변화시켜서  아프리카,아시아, 남미의 많은 영혼들을 향한 사랑으로 충만케 한 것도 오직  성령의역사 때문이다.  이 부흥의 불길이 바로 윌리암 케리(선교의 아버지)에게로이어져 1792년에 선교회를 형성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선교회가  탄생하였다.


  D. 현대 선교 시대(1792- )

  라토렛(Latourette)이 "위대한 세기"라고 명명한 19세기에 들어서자 영국과 북미의 개신교 교회들은 진지하게 대위임령을 수행하기 시작했으며,  선교사들을 모든 기독교 세계에  파견하기  시작했다.  1792년  윌리암  케리(Willam Carey)는 이 일을 선도했다. 그의 직접적인 영향의 결과로서  다른선교회들이 세워졌다. 즉, 런던 선교 협회(1795),  스코틀랜드  글레스고우선교 협회(1796), 네덜란드 선교 협회(1797), 교회 선교 협회(1799),  미국선교 이사회(1810),미국 침례교 선교협회(1814)등이다.

또 다른 중요한 것이 성서 공회, 즉 영국 해외 성서 공회(1804), 스코틀랜드 국가 성서 공회(1809), 네덜란드  성서  공회(1814),  미국  성서  공회(1816)등의 형성이었다. 이 기관들은 모든 선교의 장(場)에서 성서의 번역,출판 및 배본을 맡게 되었다. 19세기 초기 10년간에는 각 교파별로 서로 자기 교파의 해외선교회를 구성했으나, 19세기 말에는 선교사들을 받아  들이려는 모든 나라에 초교파적으로 선교사들을 파송하게 되었다.

당시 케리를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은 "주의 영"의 역사가 저들 자신의  심중에서 원동력이 되고 또는 이교도들의 마음속에 죄를 인식시켜 회심시키는힘이 되어진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 한 예로써 1810년 인도에서  돌아온부카난의 설교 속에서 성령의 힘을 강조한 것을 들수 있다. "  ...  성령은저들의 마음을 진리에로 이끌었다."  이 점에 있어서 헨드릭 크레머는 오직성령만이 기독교와 타종교간의 접촉점이 될 수 있다  고 한 주장은 선교 역사의 장(場)속에서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말씀을 설득하게 하는 자는 성령이시며,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는 것은  궁극적으로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한다.  이러한 성령의 강한 역사속에서의 영향력으로 1년에 평균 3개 이상이 증가하여 20세기 초반에는  선교회가 거의 500여개가 되었다.

  이러한 열풍은 중국에 갔던 칼 구쯔라프(Karl  Gutzlaf)의  선교노력에서다시 드러났다. 이러한 선교의 사역으로 인해 새로운 선교활동의 모형이 완성되었고, 이 새 모형은 '믿음 선교부(Faith Mission)'라고 알려진  것으로영국과 미국에 그리고 다른 곳에서 선교부의 모델로 섬기게 되는 역활을 하였다.

그리고 특히 구쯔라프의 열성으로 직접 열매 맺혀진 것으로써 1865년에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에  의해  중국  내지선교회(China  InlandMission, 현재는 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으로 불리운다.)가  시작되었다.  테일러는 캠브리지 7인의 한 사람으로, 그 그룹 회원 중 6명이 테일러와 함께 중국 선교에 헌신하였다. 이 캠브리지 7인의 영향은 그 기도회에 있었는데, 이것이 뒤에 미국의 학생 해외선교의 전환기를  만든  헬몬산집회에도 영향을 주고, 기도회 운동이 이 집회 후에도 각 대학  캠퍼스에서강하게 일게 된다.

  '선교의 영'이신 성령  의 선교의 사역의 강한 열풍이  신대륙에도  불어닥쳐서  사무엘  제이  밀스(Samuel  J.  Mills)와  제임스  리차드(JamesRichards),  프란시스  로빈스(Francis  Hall),  하베이  루이스(HarveyLoomis), 고든 홀(Golden Hall), 루터 라이스(Lutter Rice),  바이론  그린(Byron Green)등이 헤이스텍 기도회(Haystack Player Meeting)를 통하여 선
교의 비젼을 불태웠다.

이들은 [건초더미 사람들]으로 알려진 사람들이었는데, 그 후 사무엘 뉴엘(Samuel Newell), 사무엘 놋트(Samuel Nott),  아드니람  저드슨(HadoniramJudson)등이 이에 가입하였다.  이들을 통하여 인도와 실론등에 성령의  능력안에서 복음이 수출되고, 저드슨은 버어마에 역사적인 선교의 거보를  옮기게 되었고,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20세기는 계속되는 선교에 대한 관심과 활동의 물결을 확인 할 수  있다.
오늘날 전 세계에 로마 카톨릭의 선교사 숫자보다 2배 이상인 약  55,000명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있다.  (cf.10만명 이라는 최근 통계가 있음) 현  세대에 상상못할 규모로 전세계 대중에게 성령의 역사로 헌신된 그의  종들을통해 복음이 전달되고 있다. 수 천명 뿐만 아니라, 수 만명이 호응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2만명이 그리스도에게 돌아 오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것은 거룩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 것이며, 이 일은  성령께서그의 사람들을 통해서 전세계에 복음이 증거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지금까지 선교의 역사를 대충 살펴보았는데,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의사역으로 가능하게 되었던 큰 일들을 이루셨다는 사실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실때 교회가 부흥되고,복음이 능력안에서 선포되었으며, 죄인들이 수없이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독교 선교사 속에서 이런 성령의 역사가 있기 까지에는 성령의 능력과 역사를 간구한 기도 운동이 있었다 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4. 선교와 성령의 능력의 연관성.

  A. 하나님 나라의 개념.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은공적사역을 시작하셨을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셨다(막1:15).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메세지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메세지임을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현존은 하나님의 나라를 미래의완성을 향해 활동하는 현재적인 실재로 보여 주었다. 신약성서에서 왕국(Kingdom)의 헬라어는 '바실레이아(Basileia)'인데, 원래" 왕의 주권" 또는 "왕의 통치"를 의미하는 말로써,  그 의미는 '왕이 되는것', '통치하는것', '다스리는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왕이  다스리는 권능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나라  라는  말이하나님 나라에 적용되어질 때, 그것은 항상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지배,하나님의 주권을 지칭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왕권이요, 하나님의 통치요, 하나님의권위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미래영역 뿐 아니라, 그 영역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으로 본다면, 미래 하나님 나라의 능력의 활동은실재적으로 하나님 나라 자체의 현존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의 실재와 미래의  기대간의,"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간의  긴장관계를 볼 수 있다.현재의 실재로서, 예수님의 육체적 현존이 지상으로부터 사라져 버린 지금, 그의  성령이 그의 백성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설립하신다.  따라서  성령께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 -선교- 해 가려고 할  때  필연적으로어둠의 영인 사단과의 충돌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징조들은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의 전진 앞에 물러나고  있다는 증거들이었다. 죤 스토트(Jhon Stott)는 하나님 나라의 징조들로써 첫째 그의 백성 가운데 있는 예수님 자신이며,(요15:1,  16:13,  막2:18-20),둘째 복음의 선포이며(눅4:18,19;7:22), 셋째 마귀를 쫓아 내는것, 넷째 치유와 자연의 기적들(눅7:22,요14:22), 다섯째 회심과 신생의 기적이며(살전1:9-10, 롬1:16, 히6:5), 여섯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갈5:33-23,  롬4:17), 일곱째는 고난이라고 제안했다(벧전2:21,빌1:28-29, 살후1:5).

이런 측면에서 예수께서 우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함과 동시에  하나님나라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고 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자를 다시 살리는 등의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자신이 기름부음 받은자 -메시야- 로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드러내는 분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셨다.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도래한 것이며,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든가  또는배척하든가의 결단을 내려야 할 엄숙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셨다.

  래드는 "우리는 신약성서에서 사탄이 하나님 나라를  침노하거나  하나님나라 자체에 대하여 자신의 권능을 행사한다는 개념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 "사탄이 공격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들이다. 이렇게 볼 때 공세를 취하는 것은 하나님 쪽이며,  사탄은 방어적인 위치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대하여 그 권능을 행사하며,  강권적으로  그나라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결론짓고있다.

  "복음전도는 그것의 축복과 약속의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 이라고 볼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는 사단과의  영적싸움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B. 선교와 초자연적인 성령의 능력.

  1. 선교에 있어서의 기적의 역할.

  기적은 우리 주님의 복음전도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4복음서 안에는 35개의 개별적인 기적들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더우기 그가 행한 기적들 중에는 기록되지 않은 것도 많다(요20:30).  이  기적들은인간과 자연과 마귀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표현하였다.

허버트 케인(Herbert Kane)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기적의 연관성에  있어서4가지 측면을 열거했는데 첫째는 메시아적 선포를 확증하기 위하여, 둘째는개인에게 믿음을 주기 위하여, 세째는 민족적 회개를 촉구하기 위하여 , 네째는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라고 했다.

  복음은 악의 권세에서 해방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건설, 그리고 모든 면에서의 주님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기쁜 소식으로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성서가 말하는 구원, 하나님의 나라는 죄와 세상의권세(죄의 세력), 그리고 사탄의 지배로부터의 해방 모두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주님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수행하는 선교현장에는 반드시 격렬한 '영의 대결'(Power Encounter)이 일어남을 알수 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와 전도는 병행하며  상호간에 긴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성령이 그들  가운데서자유롭게 역사하실 수 있도록 환영을 받았을때 그 결과는 엄청났다. 사도행전 6장 8절에는 성령이 충만했던 스데반에 의하여 행하여진 "큰 기사와  표적"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표적과  기사를통해 교회성장을 가져오는 성령의 능력에 개방성을 가졌다.

  신약성서에는 기적에 대해 사용된 세 가지 단어가 있다.  하나는  '표적'(sign)이고, 다른 하나는 '기사'(wonder)이며, 또 하나는 '능력'(power) 또는 권능(mighty work)이다. 히브리서 2:4과 행2:22에는 이러한  세  단어가함께 나온다. '기적'의 용어 정의에는 이러한 세 가지 개념들을 모두  포괄해야만  한다. 가설적인 정의를 내린다면, 기적은 기사를 표출하는  동시에표적을 구성하기 위해 계획된 초자연적인 능력의 표현이다.

  와그너(C.P.Wagner)는 이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있다는  일차적인  증거는선교 현장에서의 "능력대결"(Power Encounter)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능력대결을 정의하기를 어떠한 집단의 사람들이 숭배하고  두려워하는어떠한 거짓된 신이나 영들보다도 예수님의 능력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가시적이고도 실제적으로 보여 주는것 이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유일성을 강조한 마닐라 선언문은  "온전한  복음"(The Whole Gospel)을 전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복음(The  Gospel)을"온전한 복음"이라고 표현함에 우리는 주의하여야 한다. 이는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되 성서가 말하고 있는 복음의 충만함(The  biblical  gospel  inits fullness)을 가감 없이 온전하게 전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복음이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이라면, 이 좋은 소식을 하나님 나라의 충만함 그 모든면(dimension)을 포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복음선포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하며, 이는 사탄에게서의 해방, 곧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남을  부분적으로나마  동반한다는것이다. 복음은 모든 구속(the most basic of all bondage) - 죄와 그 결과들에서 해방- 을 약속한다. 그러므로 복음은 죄의 용서로 인한 하나님의 바른 관계의 회복 뿐 아니라, 세상의 임금을 심판하여 이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에서 자유케 하며, 더 나아가 사탄의 지배에서 자유케 할 것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복음전도는 말과 행위뿐 아니라 사탄의 지배를 격파하는  하나님의 능력(표적과 기사)을 동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성령의역사와 하나님의 역사속에서 선교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B. 선교와 초자연적인 성령의 능력.

  2. 초자연적인 성령의 능력과 세계관.

  크레프트(Charles H.Kraft) 박사는  [문화속의  기독교(Christianity  inCultule)]라는 그의 저서에서 세계관에 대한 폭넓은 정의를  내리고  있다.
세계관이란 한 문화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실재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하여형성된 관념들이 체계화된 것으로서, 그들의 가치체계에 있어  근간이 되는것이다.  또한 세계관은 문화의 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의 삶이 모든 국면에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세계관은 문화를 형성하고 유지함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목표는 문화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완전히 벗어던지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인 가치와 상충되는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보다 바람직한 세계관을 형성해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서구적인 세계관에는 어떠한 사각지대(死角地帶)가 있기 때문에 서구인들은 영적인 문제, 선조와 관련된 문제, 그리고 초자연적인 성격을 가진 문제들을 다룸에 있어서 어려운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히버트(PaulHiebert)는 이러한 사각지대를 "중간지대의  상실"  이라고  부르고  있다.
제3세계 사람들이 종교와 능력을 동일시 하는 반면, 서구인들은 종교와  진리를 동일시 하고 있다.

  블랙 미어스(Harry Blamires)는 [기독교 정신(The Christian  Mind)]이라는 저서에서 서구적인 세계관에 있어 지배적인 요소는 세속화된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잇다. "세속화된 사고 방식이란 인간의  지상에서의 삶을 그 준거의 틀로 하는 철저하게 차안적(此岸的)인 사고방식을말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신적인  개입이불가능하며, 오직 경험적인 방법과 이성적인 사고에 의해 진리에 도달할 수있다는 생각을 기초로 하고 있다.

  서구사회가 인간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고 체념했던 중세와는달리,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근대  민족국가의 발흥,  베이컨,  갈릴레오,뉴우톤의 과학적 발견, 철학에 있어 흄과 데카르트의 영향등 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만들어 놓게 되었다.  그 후  19세기로 접어들면서 부터는 유물론적 세계관이 뿌리깊게 자리잡게 되었다  .
계몽주의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모든 경험이 합리적으로 분석이 가능하다고생각했고, 심지어 윤리와 같은 영역에 있어서도 객관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獵鳴 믿었다.

  20세기에 있어 계몽주의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라브리 공동체를  이끈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나 레슬리 뉴비긴(Lessle Newbigin)같은 저술가들은 20세기  후반을  후계몽주의(Post-Enlightenment)시대라고부르고 있다.  계몽주의는 그것이 약속했던 것을  성취하는데  실패했다는것이다.  왜냐하면, 객관적인 도덕적 진리는 인간의 경험과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도출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계몽주의의 실패는 서구문명안의 도덕적 혼란을 가져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종교다원주의(Pluralism)의 발흥으로서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왜냐하면 종교다원주의는 어떤 하나의 진정한  종교는 없으며, 모든 종교는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세째로 계몽주의의 실패는 현대 과학의 원리를 금세기 서구 사회에 있어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정신적 원리로 남겨 놓았다.

그런데 현대과학은 종교적 또는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어떤 권위도 내세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적인 실재 - 가령 천사들이나 귀신들, 천당과 지옥,구속과 파멸 - 는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결과로 히버트(Paul Hiebert)가 말한 것처럼 서구인들의 의식 속에는 '중간지대의 상실'이 있게 된 것이다.

  헤롤드 린셀(Harold Lindsell)도  그의  책  [새로운  이교주의(The  NewPaganism)]에서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서구문화 속에는 형이상학에 대한  반대, 초자연에 대한 거부, 계시보다는 이성에 우선한 세계관이 형성되었다는주장을 피력했다.

  와그너(C.P.Wagner)박사는 표적과 기사를 동반하는(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 안에서의 복음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서구적인 세계관을 전환시키는 "패러다임의 전환" (a Paradigm Shift)을 거쳐야만 한다고 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서적인 세계관을 견지해야 한다.  성서적인 세계관에 입각한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에서 역사하는 초자연적인 세력의 개입의 가능성 - 필연성이 아니라 - 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도식화할 경우는 <초월적인 세계>, <지상에서 역사하는 초자연적인 세력>, 그리고 <경험적인 세계>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  된다.

  이런 성서적인 세계관으로의 변환이 그리스도인들 간에 이루어질때,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개방성의 자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성령께서는 인간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