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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오전 9시
이르쿠츠크에서 약 200km 떨어진 부랴트 마을로 가기 위해 미하일 목사님이 운전하시는 차가 도착했습니다. 새벽에 주방 창문 밖에 매달아 놓은 온도계를 살폈더니 영하 36도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며칠 째 아침 기온이 영하 35도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자녀들 모두 대학생이라 학교 수업에 맞춰 집을 나섭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이 정도 기온에 학교가 쉴 수도 있지만 대학생의 경우 영하 40도가 넘어야 합니다. 그것도 어떤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 재량으로 휴교할 수 있습니다.

마치 전사들처럼 추위를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차량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강추위에 외출했다가 시골 길에서 차가 고장날 경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미하일 목사님 차량을 수시로 고장이 나서 다소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출발에 앞서 미하일 목사님이 이 선교사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평소와 달리 혹독한 추위 속에 떠나는 길이라 더욱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미하일 목사님은 먼저 삼손 전도사에게 전화를 해서 현지 상황을 물었습니다. 아침엔 영하 43도였는데 지금은 영하 40도라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삼손 전도사 차량이 고장이 나서 운행이 어렵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티코만한 작은 차가 워낙 낡아서 조만간 새로운 차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성도들이 가까이 사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겨울 나라여서 차로 실어오지 않으면 안 될 상황입니다. 따라서 목적지로 바로 가지 못하고 먼저 삼손 전도사를 태우러 가야 했습니다.

도시를 벗어나기 앞서 슈퍼에 들려 여러 가지 먹거리를 챙기는 동안 환율이 오르는 추세이지만 CD기에서 약간의 현금도 인출했습니다.
다른 때와 달리 차 안도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겨울용 모자를 쓰려 해도 천장이 낮아 쉽지 않았습니다. 사라 선교사와 찬미는 아예 무릎을 덮을 것까지 챙겨 나왔습니다.

미하일 목사님은 운전을 하시면서 먼저 몇 가지 브리핑을 했습니다. 어제 이반 목사님이 순회 심방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가 고장나서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고 합니다. 영하 40도에 이르는 시골 길에서 자꾸 고장이 난 탓에 가까스로 집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만일 엔진이 멈춘 상태에서 구조 차량이 빨리 오지 않은 경우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겨울철 외부 온도를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차량의 배기가스 상태입니다. 뜨거운 배기가스가 찬 공기에 맞닿아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데 날이 추울수록 더 넓게 퍼져 마치 연막탄을 뿌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자칫하면 시야가 가려져서 사고의 위험성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트럭이 지날 때는 훨씬 많은 김이 서립니다.

도심을 벗어나자 이따금 목재를 실은 트럭이 지나갈 뿐 차가 많지 않은 도로를 달려가는 동안 길이 언 곳이 많지 않아 부담이 덜했습니다. 차량이 늘어날수록 도로가 얼어붙을 확률이 적은데 시내의 경우 아무리 추워도 길이 얼어 있는 예를 보기 어렵습니다. 길가에 눈과 얼음이 남아 있어서인지 보통 속도로 가고 있었습니다.

약 3시간이 다 되어 드디어 삼손 전도사 집에 도착했습니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심방 예배를 드리기로 한 까하 마을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약 30km 떨어진 한적한 부랴트 마을에 도달했습니다. 길이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 30분 이상 걸렸습니다.
땅이 넓고 집도 비교적 잘 지은 집이어서 눈에 띄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첫 심방 때 어린 양을 잡아 푸짐한 대접을 받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부부와 할머니 그리고 이웃 성도 네 명이 모여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 선교사 먼저 요한복음 15장에 나오는 포도나무 비유를 본문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선교지 상황은 사전에 설교를 준비하기가 어렵습니다. 대부분 초신자인데다 대상도 일정하지 않아 미리 구상했던 본문을 갑자기 바꾸어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러시아 찬송가는 악보가 없이 가사만 무려 2600개나 됩니다. 따라서 평소 잘 부르는 찬양 외에는 찬양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하일 목사님이 성탄절 전후에 못 온 대신 좀 늦었지만 성탄에 관한 설교를 하겠다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준비한 식탁에 모여 함께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전화가 안 되는데 3월에 드디어 전화가 가능하다며 기대감에 싸여 있었습니다.
이 마을은 아침 기온이 영하 46도였다고 합니다. 정말 추위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빌치르 마을로 돌아오자 교회에 연기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뻬치카(벽난로)에서 뿜어내는듯 연기가 숨쉬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교회 안이 잘 보이고 숨막히는 매연으로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어딘가 불이 난 것 같았습니다.
전화가 안 되는 시골 마을에 간 사이 연기가 피어올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아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보고만 있었던 모양입니다.
삼손 전도사가 물을 길러 간 사이 미하일 목사님은 실내로 들어가 눈을 뿌렸습니다. 이 선교사도 물이 도착하는 대로 뻬치카 위로 물을 퍼부었습니다. 물이 닿자 다닥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심상찮아 보였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소방차가 왔습니다. 소방대원이 서둘러 전기를 차단하라고 주문하고 지붕 위로 올라가 소방 호수가 들어갈 구멍을 뚫었습니다. 소방 호수로 물을 뿌리는 사이 다른 소방차가 왔습니다.
빌치르 마을에 비상용 소방차가 한 대 있어 신고를 받고 15분 만에 출동했고 15분 후에 비교적 큰 마을인 아사 소방서 차가 온 것입니다. 화재 감식반이 어두운 실내에서 불이 난 원인과 불씨 등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플래시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마침 이 선교사가 갖고 온 플래시를 쓰도록 주었습니다. 전도 여행을 가다 보면 밤중에 재래식 화장실 가는 일이 힘들어 보여 들고 온 플래시가 오늘따라 제 몫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행여나 불씨가 남아 있을까봐 불이 붙은 통나무 바닥을 긁어보고 어떤 곳은 구멍을 뚫기까지 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천정에 제법 넓게 불이 번진 흔적이 보였는데 두꺼운 통나무라 불이 붙고도 천천히 퍼졌던 것입니다. 전선도 몇 가닥이 안 되어 불이 옮겨 붙지 않았던 것입니다. 큰일날뻔 했습니다.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뻬치카 주위에 장작을 쌓아 놓고 말립니다. 추운 날 예배 모임을 갖게 되자 평소보다 불을 많이 때는 사이 말리려고 빼치카 위에 쌓아둔 장작에 불이 붙었던 것입니다. 장작더미와 통나무 집 천정이 거의 닿을 만큼 가까워 불꽃이 뻬치카 틈새를 타고 나와 불이 붙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언제라도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었던 상황이라 이렇게라도 해결된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주님께서 지켜주셨습니다.
불이나 천정과 벽 일부가 손실된 교회 건물은 봄이 되엉 수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재료비를 비롯해 수리비를 좀 지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침 삼손 전도사가 목수 출신이라 재료만 있으면 처음보다 더 잘 갖출 수 있습니다.

미하일 목사님 차량으로 이웃 마을 성도님들을 실어 온 후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화재 사건도 있고 해서 데갈로니가전서 5장 16절 이하를 본문으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후에 질의와 응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간호사인 할머니 성도님이 항상 기뻐하라란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 예를 들어 물어와 대답을 했습니다.
오늘 불난 것도 감사해야 하나요 하기에 우리는 주어진 결과에 모두 감사해야 한다 더욱이 불이 더 크게 나지 않고 불길이 잡혔으니 얼마나 감사하냐고 말했습니다. 영하 40도가 넘는 겨울에 통나무로 된 집과 교회(연결이 되어 있음)가 불탔으면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 샤마니즘에 싸인 지역이라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미하일 목사님의 말씀, 찬양과 기도 시간 등 모두 두 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삼손 전도사 차량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미하일 목사님이 이웃 마을까지 성도들을 보내고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미하일 목사님이 다시 돌아오자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다가 보니까 차가 고장이 나서 무사히 이르쿠츠크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삼손 전도사 부인은 그냥 가시면 위험하니까 자기 집에서 모두 자고 아침에 가라고 당부랬습니다. 통역을 위해 따라온 찬미에게 내일 수업이 중요하냐 물었더니 첫 시간 과목 교수님이 아주 까다로운 분이라고 해서 가능한 돌아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미하일 목사님도 그냥 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되었던지 우리 모두 무사히 갈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말했습니다. 삼손 전도사와 미하일 목사님, 이 선교사가 돌아가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러시아 성도들은 합심 기도란 것이 없이 반드시 돌아가면서 기도하곤 합니다.
미하일 목사님은 빌치르 마을을 벗어나면서 자기는 약 1100km 북부 바이칼 지역까지 전도 여행을 갈 때도 믿음으로 부딪혔다며 주님께 맡기고 가면 된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차량이 거의 안 다니는 밤길에 가다가 차가 고장이 날 경우 구조 차량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차에는 정상이 아님을 알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미하일 목사님은 차분하게 운전에 열중하셨습니다.

차가 섰다가 엔진이 꺼지면 안 될 것 같아 누구도 차를 잠시 세워 달라는 말 한 마디 없이 이르쿠츠크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출발한 지 2시간 반이 지나서야 마침내 이르쿠츠크로 들어오는 검문소를 통과했습니다. 할렐루야.
집 앞에 오니 1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미하일 목사님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영하 35도 이상 내려가는 밤길을 상태가 안 좋은 차량으로 운전하시느라 고심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런 분에게 누가 성능 좋은 차량 한 대 선물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러시아에는 일체 7인승 봉고가 흔합니다. 미하일 목사님 등 현지 사역자들에게 이런 차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유용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설명> 빌치르 교회 - 교회 건물은 봄이 되어야 보수가 가능해
삼손 전도사 거실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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