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의 소명

by 이재섭 posted Jul 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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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선교사의 소명
타문화권 선교의 효과적인 접촉점이 선교사 자신이라는 것은 복음 전파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일이지만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교사역의 성공 여부는 선교사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복음이 전하는 자의 입을 통하여 전달된다는 사실은 아울러 선교사의 소명과 인격이 매우 중요함을 시사해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소명의 종교입니다. 요즈음 선교사업에 대하여 강조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다른 문화에서 일하는 선교사에 게는 특수한 소명이 요구됩니다.이에 대해 피터 와그너 박사는 “선교사에게도 하나님께서 선교사의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특수한 소명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선교사의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특수한 소명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시지 않고 소명을 완성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시며 반대로 소명이 없을 때는 은사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선교사의 은사에 대하여 분명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늘날 일부 선교사들이 소명보다는 다른 동기에 의해서 선교사를 지원하는 일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선교에 있어서 선교사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소명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선교사의 자격

19세기에는 선교사가 영웅으로 간주되어 그는 지적이며 영적인 거인으로서 본국에 있는 동료 목회자 보다 더 헌신되고, 더 용감하며, 더 영적인 자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선교사의 지격은 새롭게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서 가장 좋은 최선의 선교사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선교사의 자격을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으나 사전트 감독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 사람을 잘 사귀는 자, 친절한 사람을 들고, 다지 감독은 융통성, 온전한 인격, 진지한 태도, 우정, 겸손, 배우는 태도, 확실한 신앙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허드슨 테일러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바치고 성령의 지도를 받는 신앙, 경제적 지원을 하나님께 의존하려는 신앙, 동정심과 겸손한 태도, 환경에 적응하려는 기술, 봉사에 열정적이고 낙심하지 아니하는 자세,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는 태도, 국내에서 교회 일의 경험, 건강을 자격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선교사의 자격을 인격과 태도에만 국한하고 기능적인 면은 무시되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선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타문화권에서 잘 적응하는 선교사의 생활을 하며 그리고 타문화권 선교사역을 성공적으로 할때 이것을 총체적으로 하여 가리키는 말입니다. 특별히 선교학자인 허버트 케인이 지은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이란 책은 훌륭한 선교사가 되기위한 훌륭한 지침서가 되기에 이 책을 중심으로 함께 연구해 보려고 합니다. 훌륭한 선교자의 자격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소명일 것입니다.


선교사 소명

좀더 헌신된 선교사가 되기위해 “선교사 소명이란 무엇인가, 내가 소명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 소명이 없이도 선교사가 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며 이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가져야 합니다.

소명(High Call:부르심)에는 일반적인 소명과 사역을 위한 소명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소명은 ‘모든 신자들은 성도로 부르심을 입었으며, 그와 같은 부르심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역을 위한 소명은 모든 신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의 평범한 직업을 떠나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도록 부르신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신자들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전적으로 하는 데에는 부르심 즉 아주 분명한 소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향하여 “나를 따라 오라”고 부르셨을 때,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이와같은 ‘부르심’은 어부로서의 일을 깨끗이 그만두고 오직 ‘사람 낚는 어부’라는 완전히 새로운 직업으로 나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첫째, 소명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하여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십니다”라는 고백은 초대 교회의 위대한 증언이었습니다. 그 한 가지 요소가 모든 것을 결정했습니다. “나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나는 주님의 소유물입니다. 나는 주님의 순종하는 종입니다. 주여, 제가 무엇 하기를 원하십니까?”이와같은 신앙고백이 있을때 주님께서 내가 사역하기를 원하신다면 내게는 순종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모두가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입니다.

세번째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며 기도의 생활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넷째, 지역교회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가 세상으로 흘러나가는 데 쓰이는 통로입니다. 초대교회는 결코 ‘독립적인’선교사들이 없었습니다. 각자는 지역교회의 일원으로서 그 교회에 의해 인정을 받고파송되며 후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II. 소명을 받기 위한 선행조건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선교사를 택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소명이 올때 우리가 듣고 응답하는 자리에 있도록 준비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해야할 책임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조건들을 갖춘다면 소명을 받을 기회는 훨씬 많아질 것입니다.

첫째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상 자신이 편견과 편애의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도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들 스스로가 “내가 싫어하는 이것 말고는 어떤 것이라도 감당하겠습니다. 질병의 위협이 많은 선교지 말고는 그어떤 곳이라도 가겠습니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편견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소명을 기다리는 것은 헛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대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정직하고, 자기의 선택권을 내려 놓고, 성령께서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둘째로는 경청하는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밤중에도 젊은 아기엄마는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가 있고, 즉시 일어나 밤 두시에 먹일 아기 음식을 준비합니다. 반면에 아빠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에 같은 방안에 있으면서도 편안히 잠만 잡니다.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엄마속에 있는 모성적인 본능은 청각을 예민하게 하여 어린 아기의 가느다란 울음 소리를 듣고서 잠자리를 박차고 나올 정도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엄마는 ‘한쪽 귀는 열어 놓고’잠잤고, 아기 아빠는 두 귀를 다 닫고 잤던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연습함으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작은 속삭임에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세번째로는 바쁜 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결코 게으른 사람에게가 아니라 바쁜 사람에게로 온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다윗, 베드로, 마태와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왔을 때 모두가 어떤 바쁜일 가운데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소명의 가능성에 대해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님을 위해 어떤 일에 열심으로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넷째는 준비된 발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지이다”(시119:32). 시간은 없고 하나님의 선교 명령은 시급합니다. 여기에 우유부단과 연기하는 것은 사역을 위한 소명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인도하심에 따라 기꺼이 행동하고 그 결과를 그분이 책임져 주실 것을 또한 기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http://hwarang.or.kr 이원형 (zaini)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