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닌 시작

by 이재섭 posted Oct 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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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렇게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의 단기 사역기간동안 나에게 다가 오셨다. 물론, 그밖에도 사역기간 동안 많은 것들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 아프리카, 이 땅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많이 느낄 수 있었고 사람들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이 땅의 아이들 눈을 통해 보여주셨고 가진 게 너무 없어서 오히려 행복해 할 수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셨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서 내려놓게 하실 때에는 뭔가 주시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두 손 가득히 쥐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을 수가 없잖니.” 나의 ‘멘토’이신 분의 말씀이셨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많은 것을 주시고자 내려놓는 연습을 하게 하신다. 누구보다 욕심이 많은 내게. 아프리카 단기선교. 이것도 그 훈련의 연속이었다. 뭐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어야만 안심을 하는 나는 올해의 계획 중, 교회에서 정말 하고 싶은 것이 2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제자훈련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해외 단기 선교였다. 그리고 내심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별 어려움 없이 그것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의지, 나의 시간, 나의 환경만이 허락된다면 말이다. 내가 가고자했던 우즈벡 단기 선교의 문이 닫히기 전까지는 모든 세상이 내 중심으로 뭬튼±� 한다고 생각하는 이런 내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우즈벡의 현지 상황이 안 좋아 선교를 나가지 못한다는 공지를 받고서야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앉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꼭 올해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기도하면서 내년을 준비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하기까지 단기선교 자체를 내려놓았고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결국 아프리카로 인도하셨다.

아프리카. 나에겐 너무 생소하고 먼 그런 미지의 나라였다. 남들처럼 이 땅을 품고 특별히 기도 할 만큼 내게 애틋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꼭 한번쯤 가보고 싶을 만큼 내겐 매력적인 땅도 아니었다. 내게 단지 아프리카는 단기 선교지 중의 한 곳이었고, 그 곳에서 만날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찬 땅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한지 이틀이나 지난 새벽 5시에 아프리카에서의 첫날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가 지내게 된 곳은 이순복 선교사님께서 15년간 지내시면서 일궈놓으신 컴파운드 내의 작고 아담한 신학교 건물이었다. 교실과 같은 곳에 종이 상자를 깔고 그 위에 돗자리를 편 후, 모기장을 친 곳이 우리의 잠자리였다. 처음 막막한 아프리카를 떠올렸을 때, 정글, 밀림, 움막 같은 것을 생각했기에 내게 허락된 이곳은 너무 만족스러웠다. 적어도 하나님께서 내가 꼭 쥐고 있는 첫 번째 것을 내려놓게 하시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 특히나 예민한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겪게 되는 문제 중 하나가 화장실 문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도 그랬다. 우리가 있었던 곳의 화장실은 물이 내려가지 않는 좌식변기였다. 깨끗한 수세식 변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응할 수가 없었다.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밥을 먹는 것이 공포스러울 지경이었으니. 그래서 나도 모르게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이런 나를 하나님은 나를 다루시기 시작하셨다. 사역지에 도착한 지 3일째, 물품정리 및 숙소 정리를 하다 팀원 중 두 명의 자매가 청소 당번을 정해야겠다고 얘길 했고 자연스레 화장실 청소 얘기도 나왔다.

우리가 머물게 될 기간과 인원을 배치해 보니 대충 2명 정도씩 1번씩만 청소를 하면 될 것 같았다. 한번쯤이야 다들 흔쾌히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해야만 했다. 당연히 처음이 가장 힘들 것이었으므로 먼저 의견을 내놓은 두 명의 자매와 내가 하기로 했다. 사실, 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눈 딱 감고 같이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진행되었다. 청소를 해야 할 두 명의 자매가 다음 날 시작할 유스 캠프 준비로 함께 청소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 때 나는 직감적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키시고자 함을 느꼈다. 물론, 다른 두 명의 자매들과 함께 청소를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직감은 그대로 맞았다.

여기서는 매일 나오는 쓰레기를 소각하는데 불이 꺼지기 전에 쓰레기를 모아 소각장으로 가져가야 했다. 그날따라 비도 내리고 버려야할 쓰레기도 많았다. 그래서 함께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 두 명의 자매들은 주방에 있는 쓰레기와 숙소, 화장실 등에 있는 각종 쓰레기를 들고 바쁘게 소각장으로 갔다. 나는 혼자서 화장실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변기 2개를 닦고 변기 바닥, 세면대 바닥 등을 세제를 풀어 열심히 닦았다. 화장실 바닥에 하수구가 뚫려 있지 않아 물을 다시 양동이에 담아 바깥 화단에 뿌리기를 반복하며. 처음에 화장실에 청소를 하러 들어왔을 때만해도 나는 하수구가 없어 흙탕물이 고여 있는 화장실이 더럽다고 생각되어 까치발을 띠고 들어섰었다. 그런데 청소를 하다보니 흙탕물이 발에 묻는 정도가 아니라 다리와 팔에 튀어도 후각까지 무뎌져 아무 느낌이 없었다. 청소를 하는 내내 나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더러워서 못 사용하겠다니, 내가 깨끗하게 청소해서 사용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것을 내려놓게 하셨다. 여름 성경학교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은 성경학교 마지막 날이라서 아이들에게 점심을 주는 시간이 있었고 우리도 함께 현지 음식을 먹는 날이었다. 편식이 심하고 비위가 약해서 삼계탕도 못 먹는 내가 현지 음식이라니. 아침부터 걱정이었다. 속이 안 좋다고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성경학교를 마치고 점심시간이었다. 우리에게도 커다란 쟁반같이 생긴 양푼에 잔뜩 밥이 주어졌다. 그 위에는 소스가 뿌려져있었는데 소스는 고추기름 같은 것에 식물잎사귀와 말린 생선을 넣어 만든 것이었다. 맛은 둘째 치고 느끼한 기름이 비위에 안 맞아 보였다. 게다가 깨끗하지도 않아 보였다. 그런데 함께 있던 자매 중 하나가 아침을 못 먹어 배가 고프다며 너무 맛있게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다들 먹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차마 못 먹겠다는 말이 안 나왔고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고 하고 싶은 일만을 하려고 이곳에 왔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성령께서 주신 생각이었다. 다들 정말 맛이 있어서 저렇게 맛있게 먹을 리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이 부분도 내려놓게 하시는 구나’ 라고 생각하니 먹을 수밖에 없었다. 밥 한 숟가락 먹고 물 한 모금 마시기를 반복하며...

이틀 뒤 하나님은 또 한 가지를 내려놓게 하셨다. 유스 캠프 마지막 날 참석한 청소년들을 데리고 난민촌으로 아웃리치를 갔다. 출발 직전 우리는 영어로 된 4영리를 나누어 가지고 조를 편성했다. 보통 팀원 2-3 명과 현지인 2명 정도가 한 조로 구성이 되었다. 난민촌의 한 가정씩을 방문하여 우리가 영어로 4영리를 읽으면 현지인이 크레오어로 번역을 해서 전하는 것이었다. 나는 뉴욕에서 공부하고 있는 형제와 81또래 자매와 한조가 되어 너무 다행이었다. 영어를 못하는 내가 안 해도 되었기 때문에. 그런데 출발 직전에 인원이 부족하니 조를 더 만들어야 한다며 나는 강도사님 그리고 현지인 2명으로 구성된 조에 편성되었다. 그래도 별 부담감은 없었다. 영어가 되시는 강도사님이 계셨기에, 그런데…

난민촌에 도착하자, 캠코더를 들고 촬영 중이시던 강도사님께서 “미라야, 네가 혼자 해야겠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바쁘게 가시는 것이 아닌가!! 이런, 무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시키시고 계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네가 하는 것이 아니니 염려 말고 읽기만 해라.’라고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이든 해보지 않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을뿐더러 스스로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연습을 해야 하는 성향의 사람이다. 운전을 한지 4년째가 되가는데도 늘 다니던 길로만 가고, 가게도 가는 곳만을 즐겨서 가는 정도인데, 게다가 자존심이 강해서 창피한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인데 이런 성격인 내게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내려놓게 하고 계셨다. 결국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속으로 기도를 하면서 책자에 쓰여 있는 4영리 하나도 빠짐없이 더듬더듬 읽어 갔다. 처음에는 가족 모두가 다 관심 없이 자신의 일들을 하고 얘기를 주고받는 등 산만한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장으로 보이는 한 남자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계속 4영리를 가리키며 읽어갔고 결국 심드렁하던 그 사람이 마지막 단계에서 예수님이 마음에 중심에 있는 그림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 중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보이며 그 그림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영접기도를 하려던 찰나에 강도사님이 오셨고 무사히 영접기도 마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꿈에서 깨어난 듯 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의 단기 사역기간동안 나에게 다가 오셨다. 물론, 그밖에도 사역기간 동안 많은 것들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 아프리카, 이 땅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많이 느낄 수 있었고 사람들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이 땅의 아이들 눈을 통해 보여주셨고 가진 게 너무 없어서 오히려 행복해 할 수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셨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을. 하지만 이번 단기 선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내려놓는 연습을 하게 하신 것이었다. 내 그릇 안에 가득 찬 것들을 내려놓은 후, 하나님의 것들로 채울 수 있게.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디모데후서 3: 21)

아프리카를 떠나는 날, 공항으로 가기 위해 배에 올랐다. 어슴푸레 노을이 지는가 싶더니 전기가 없는 땅이라 갑자기 어둠이 찾아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멀어지는 아프리카 땅을 눈에 담고 가고 싶었다. 그런데 배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땅을 한 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나님, 이 땅을 한 눈에 담을 수가 없어요, 너무 커요. 너무 커서 한 눈에 담아지지 않아요. 그래서 여러 번에 담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라고 고백을 했다. ‘선교’라는 두 글자가 내게는 너무 거창하고 멀게만 느껴졌었다. 그래서 선교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단기 선교를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선교는 삶이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은혜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해야 하며 그리고 그것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그렇기에 아프리카는 내게 있어 끝이 아닌, 시작인 것이다.

* 2005년도 여름단기선교 사역 현장 수기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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