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 그곳에 가면 바이칼 호가 있다 -

by 이재섭 posted Apr 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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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은 세계지도에서나 봐왔다. 그러나 이제 동토로의 여행도 남의 일이 아니다. 바이칼로 향하는 길에서의 설렘과 그곳에서의 색다른 체험, 그리고 돌아와 잔상으로 남은 추억들.

- 그곳에 가면 바이칼 호가 있다 -

시베리아의 정 가운데에 위치한 바이칼로 가는 길목은 이르쿠츠크.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횡단열차를 타고 5,185㎞를 달려야 만나는 도시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의 관문인 리스트비얀카는 차를 타고 70를 더 가야 한다.


바이칼은 ‘시베리아의 진주’ 로 불린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의 눈처럼 파랗게 보인다고 한다. 바이칼의 나이는 2천5백만 살. 보통 호수의 수명이 3만년인 데 비하면 8백배나 오래 산 셈이다. 가장 깊은 곳이 1,742m로 세계에서 가장 깊다. 길이는 400㎞, 폭이 가장 넓은 곳은 80㎞에 이른다. 이 호수의 이름은 원주민인 브랴야트 언어로 ‘풍요로운 호수’ 라는 뜻이다. 바이칼에는 26개의 섬이 떠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이자 가장 큰 섬인 알혼 섬에는 징기스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바이칼은 시베리아 최고의 휴양지로 호수 주변에 휴양소가 많다. 이르쿠츠크와 울란우데 등 바이칼 호 주변의 러시아인들은 여름휴가를 바이칼에서 보낸다.


바이칼로 가는 길은 앙가라 강을 오른쪽에 끼고 달린다. 3백36개의 강이 바이칼로 흘러들지만 나가는 곳은 앙가라 강 하나뿐이다. 그 강을 따라 다차 마을이 몰려 있다. 다차는 텃밭이 딸린 별장이다. 1917년 붉은 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자기 땅 갖기를 소원하는 인민들에게 1백 평쯤 되는 땅을 나눠줬다. 러시아인들은 그 땅에 작은 통나무집을 짓고 오이와 감자, 파 등 식탁에 오르는 대부분의 채소를 재배했다. 1990년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루블화가 휴짓조각이 되었을 때 러시아인들이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다차 덕이다. 그러나 다차 풍경도 많이 변했다. 자본주의가 빠르게 침투하면서 다차는 매매가 가능해졌고, 러시아의 신흥부자들은 다차를 여러 개 사들여 화려한 별장으로 꾸미기도 했다. 양가라 강 주변의 다차에는 신축한 화려한 통나무집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 페치카에서 맛보는 훈제 오물요리 -

라스트비얀카의 겨울은 삭막하다. 여름이면 러시아 각지와 유럽에서 온 배낭족들로 붐비는 곳이다. 그러나 살을 에는 추위 탓인지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 볼 수 없다. 한국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면 이곳으로 돌아와 번식을 하는 가창오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에서 휴식하며 바이칼에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오직 광야처럼 넓은 얼음평원에 은빛 햇살만 부서지고 있다.



겨울에는 2m이상의 두께로 언다는 바이칼은 수정처럼 맑다. 이 위로 겨울이면 교통 표지판이 놓이고 차들이 왕래한다. 바이칼의 북쪽 끝 타이가 삼림지대에는 울란우데까지 바이칼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놓아 원목을 운반하기도 한다.

바이칼의 이름난 먹을거리는 ‘오물’ 이라는 물고기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바이칼에만 사는 오물은 백화나무 연기로 훈제를 해서 먹거나 소금으로 간해 말려서 먹기도 한다. 바이칼을 바라보며 맥주와 함께 훈제 오물을 먹는 맛은 남다르다.
한겨울이면 -50℃를 넘나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바이칼. 이곳에서는 극한의 추위를 이기며 살아가는 러시아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우선 보드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독주로 소문난 보드카는 얼어붙은 속을 녹인다. 러시아인들은 집으로 돌아오면 보드카 석 잔을 연거푸 들이켜 속을 달래고 나서 식사를 한다.

- 바이칼이 잉태한 역사의 흔적 -

페치카가 없는 시베리아의 밤도 상상할 수 없다. 난방시설이 잘 된 도시를 제외하고 시골의 러시아인들은 페치카로 겨울을 난다. 앙가라 강에 위치한 시비리스카야 자임카는 러시아의 전통 통나무집에서 하룻밤 머물 수 있는 곳이다. 한밤 내내 식지 않는 페치카의 열기와 몸이 꼭 끼는 작은 침대, 곰가죽으로 장식한 문에서 시베리아에 살던 원주민들의 삶이 느껴진다.


겨울 시베리아에선 사우나도 명물 중의 하나. 러시아의 사우나는 달군 돌에 물을 뿌려 뜨거운 수증기를 뿜어내게 하고, 그 열기고 몸을 녹인다. 이때 여름에 가지를 잘라 말려놓은 백화나무에 물을 적셔 발끝부터 머리까지 온몸을 두들겨야 한다. 사우나로 몸이 달아오르면 밖으로 나와 눈밭을 뒹굴거나 아예 얼음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몸이 식으면 다시 사우나로 들어가 뜨거운 홍차와 꿀에 절인 산딸기를 먹는다.

바이칼로 가는 길목인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에서 가장 먼저 열린 도시다. ‘시베리아의 파리’ 라 불리는 이곳은 러시아 시베리아로 영토 확장을 하던 16세기 카자흐스탄 기병대가 발을 들여놓으면 역사가 열렸다. 이 도시에는 1백년 이상 된 전통가옥이 수두룩하다. 전통가옥은 창틀마다 문양으로 장식하고 곱게 채색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통가옥은 심하게 낡았고, 지반 침하가 심해 땅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이르쿠츠크의 역사에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데카브리스트다. ‘12월의 당’ 으로 불리는 데카브리스트는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와 맞서 싸우다 개혁사상에 눈을 뜬 귀족 출신의 청년장교들을 뜻한다. 이들은 18326년 전체 차르를 향해 거사를 일으켰지만 내부 밀고자로 인해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다. 낭만주의 혁명가들은 당시의 수도였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6,000㎞이상을 걸어서 유배 온다. 그들의 대부분은 20㎏이 넘는 쇠사슬을 차고 광산이나 벌목장에서 일했다. 세월이 흘러 유배에서 풀려났지만 그들은 상트 페트르부르크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르쿠츠크에 남아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을 가르치며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이르쿠츠크에 있는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에는 암울하기만 했던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들이 남긴 발자취로 인해 이르쿠츠크는 러시아인들에게 시베리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로 기억되며 ‘시베리아의 파리’ 로 사랑받는다.

-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비친 풍경 -

이르쿠츠크에서 230㎞ 떨어진 아르샨은 이름난 온천지다. 징기스칸이 요양을 했던 곳이란 전설이 있는 이곳은 1백50년 전쯤 브랴야트의 사냥꾼들이 발견했다고 한다. 탄산 성분이 함유된 미네랄 온천으로 온천수에 코를 디밀면 숨이 터 막힐 정도다. 눈 쌓인 허허벌판에서 수증기가 치솟으며 온천이 솟는 모습도 신기하다.



브랴야트 자치공화국에 속한 아르샨은 몽골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드넓은 초원이 있고, 말고 소를 기르는 목장이 있다. 몽골의 피가 흐르는 브랴야트인들은 러시아어를 쓰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한국인과 흡사하다.

이르쿠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동쪽으로 150㎞ 가면 슬루얀카에 닿는다. 이곳에서는 바이칼을 끼고 도는 기차를 탈 수 있다. 슬루얀카에서 리스트비얀카가 마주 보이는 보르트바이칼까지 70㎞를 달려가는 기차다. 이 기찻길은 1957년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다녔다. 그러나 앙가라 댐이 만들어지면서 철교가 물에 잠겨 새로운 기찻길이 놓였고, 이 기찻길은 현지 원주민들만 이용하게 됐다. 바이칼 호수 주변의 원주민들에게 기차는 세상과 이어주는 끈이다. 기차는 식빵을 나르고, 우편물을 나르고, 타지의 소식을 전해주는 역할을 도맡아 한다. 최근에는 바이칼을 찾아 나선 유럽인들과 일본인들이 관광용으로 많이 찾는다.



이 기차의 최고 속도는 40㎞. 숱한 터널을 지나고 굴곡이 심해 더 빨리 달리면 탈선하게 된다. 게다가 마을마다 생필품을 전달해주며 달리기 때문에 한없이 굼뜨다. 7㎞0를 가는 데 6시간쯤 걸린다. 정착역은 따로 없다. 기관사가 서고 싶은 곳에 서면 그만이다. 이 기차를 타면 대자연의 무한한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바이칼을 원없이 볼 수 있다.

<글 김산환 여행작가>

바이칼 여행 길잡이

항공편으로 가려면 인천에서 노보시비리스트를 경유하거나 하바로프스크를 경유해야 한다. 블라디보스톡이나 하바로프스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해도 된다. 블라디보스톡에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이르쿠츠크까지 3박4일 걸린다.

러시아 여행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우선 언어의 장벽이 심하다. 기본적인 영어도 통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라 러시아어를 모르면 여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러시아는 사회주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어 불편이 따른다. 3일 이상 머물면 반드시 해야 하는 거주지 등록이나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입출국 절차, 돈을 뜯으려고 눈을 부릅뜬 경찰 등 여행자를 난처하게 하는 일이 많다. 따라서 러시아 전문여행사를 이용해 여행하는 것이 편리하다.

http://kr.blog.yahoo.com/cho20001/8458 2005/01/29

사진설명- 바이칼 호수의 명소 중 하나인 발쇼이 까띠를 찾은 한국인 음악가
김해교향악단 톱바이올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