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주는 행복

by 이재섭 posted Aug 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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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윤효숙 


 내 컴퓨터 옆에 한 장의 사진이 붙어있다. 여동생과 제부, 조카 셋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동생네 가족사진 옆에 식당의 웨이터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같이 찍혀 있다.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벌써 옛 추억이 되어버린 지난해의 일이 또렷이 떠오른다.
 큰딸 산후조리에 지친 나를 위로하려고 동생이 집으로 초대하였다. 유난히 인정 많고 마음씨가 고운 막내 여동생은 7일 동안 이곳저곳으로 나를 안내하며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호강을 시켜주겠다.’는 말대로 약속을 지켰다. 거기서 있었던 일은 모두 수필로 남겨서  더욱 뜻 깊은 여행이 되었다.
 동생은 아프리카의 한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다. 후원단체에서 행복한 가족사진을 보내달라는 연락이 와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마침 동생은 가족과 외식을 하려던 참이었다. 동생은 숲 속에 자리 잡은 근사한 식당으로 나를 안내했다. 식당에서 가족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동생은 일상생활의 일들을 사진으로 찍어 달력으로 만들어 기념하는 재주가 있다. 내가 ‘우리 집 십대 뉴스’를 쓰는 것처럼 동생은 달력으로 자기 집의 뉴스를 남긴다. 그날도 나와 동생 가족이 같이 식당에 간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후원아동에게 보내려고 하였다.
 첫 번째 사진은 그런대로 괜찮게 나왔다. 아마 두 번째 사진이 없었으면 그 사진을 선택했을 것이다. 동생은 사진을 확인하더니 큰조카의 표정이 약간 어색하다며 다시 찍어야겠다고 했다. 큰조카는 한참 자의식이 강한 대학생이라 특별한 일이 없을 땐 가족들이 외식하는데 따라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그날은 이모인 내가 와서 바로 그 특별한 날인 셈이었다. 그런데도 표정은 그렇게 즐겁지 않은 표정이었다.
 우리는 다시 찍으려고 삼각대를 맞추어 놓고 폼을 잡았다. 이때, 갑자기 웨이터가 나타나더니 자기도 찍어야겠다고 끼어드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너무 우습고 황당하여 그만 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큰 조카의 떨떠름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멋지고 훈훈한 표정의 매력 있는 청년이 남아 있었다. 그 사진은 억지로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마치 사진대회에라도 내보낼 만한 기막힌 사진이었다. 가족 모두의 표정이 살아있고 행복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동생은 내가 머물던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아 앨범을 만들어 보내주었다. 그 중에서도 그 웨이터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표지로 만들었다. 그 사진을 보면 즐거웠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행복하게 했다. 우리 모두에게 행복을 주었던 이름도 모르는 그 웨이터가 참 고맙고, 재치 있는 사람 같았다. 특별히 잘생기지도, 그렇다고 학식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 식당의 보배임에 틀림없었다. 어찌 우리에게만 그런 친절을 베풀었겠는가? 식당의 손님들에게 한결같이 그런 친절을 베풀었으리라.
 우리 주변에는 그렇게 분위기를 바꿔주는 ‘피스 메이커’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그런 피스 메이커가 되기는 쉽지 않다. 웃음을 주는 사람은 타고 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이 말할 때 웃기는 잘하는 편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웃음을 줘야 한다면 그것은 잘 되지 않는다.
 어느 날, 교회에서 유머를 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유머 책을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단단히 준비를 했다. 내 차례가 되어 준비한 유머를 소개했는데 그만 웃음의 최고봉에 이를 즈음, 내가 먼저 웃느라고 사람들에게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교인들은 웃어 주었다. 내용을 이해하고 웃은 것이 아니라 유머를 하다가 내용을 더 진전시키지 못하고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웃어 준 것이다.
 남을 웃기려면 자신은 웃지 않고 웃겨야 하는데, 개그맨이라면 몰라도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웃기지는 못하니까 내가 차라리 웃는 사람이 되어 상대방의 대화를 잘 들어주고 분위기를 맞추어 주기라도 해야겠다.
 성경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야고보서 2: 15-16)라는 말이 있다.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하며 주위를 돌아보고 최소한 그의 쓸 것을 다 대어주지는 못할지언정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보아야겠다.
 아마도 사진속의 그 남자는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기뻐하는 사람일 거라 생각되었다. 한 사람이 끼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큰 것일까? 한 사람이 밝히는 촛불은 옆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또 그 옆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이 빛을 볼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아닐까? 안동 하회탈처럼 환히 웃는 한 사람으로 인해, 메말라가는 내 마음이 잠시 촉촉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
(2013.8.1.추억의 앨범을 뒤적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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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 전만해도 시베리아 밤 바람이 차서 긴 팔 옷을 입고 이따금 전기난로까지 켜 가면서 지냈는데 한국이 더욱 무더워 보인답니다. 광주 정 목사님 교회를 방문해 웹 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글입니다.  미소와 행복을 나누어주는 삶이 아름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