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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 선생님은 우리 가족이 박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고 끄즈오르다 교회 교인 대표이신 보리스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 상황을 알렸다. 

알라 선생님 소개로 보리스 선생님과 통화해 보았다보리스님은 본래 행정가 출신으로 60세 정도되신 경험 많은 고려인 전도사님이다그분이 한국어가 능숙했던 탓에 전화로 인사를 나누었다

 

말이 통할  있는 분이 생겨 많은 도움이 되었다박이 이 나라 와서 세 곳에 교회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이분이 나서서 모든 행정을 담당하므로 가능했던 일이라   있다 이분은 한국도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더욱이 현지인이면서도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해 지나온 상황을 설명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을 입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한국인이 이곳까지 와서 기공이의 문제를 지적해야 점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목사님, 아니 그 사람이 한국에서 여기를 어쩌겠다는 겁니까. 그 사람 말은 아예 잊어버리고 소신껏 일 하세요. 선교사 비자있고 배후에 지원하는 교단(선교회)이 있으면 됐지 그런 사람 말에 신경 쓰지 마세요. 아주 나쁜 사람이예요. 더구나 그 사람 비자 때문에 이 나라에서 일 못하게 돼 있어요. 혹 그곳이 아니라도 이 나라에 일할 곳이 얼마든지 있어요.”  하는 말에 다소 위로가 되었다.

  보리스 선생의 말에 의하면 박은 남의 나라에 와서까지 자기 마음대로 활동해 오다가 결국 문제 인물로 지목되어 현지 정부로부터 강제추방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카자흐스탄은 물론 러시아, 우즈벡, 키르키제 등 카자흐스탄을 둘러  5개의 구소련국에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면서 이번에 무사히(?) 들어 온 사실에 놀라기까지 했다

구소련은 한쪽 비자가 있으면 대개 72시간 동안 이웃 구소련에  수가 있다. 따라서 아예 주변 나라에까지 법이 유효한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추방 결정을 내렸지만 카자흐스탄 행정이 글이나 도장에 주로 의지해  만큼  벽을 뚫고 들어온 것이다).

 

그동안 실망이 얼마나 컸으면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함께 있었으면서도 아예 그가 이땅에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을까. 그분의 말을 듣고 나또한 숙연해졌다

 (카자흐스탄은 행정이 지방자치제로 되어 있는데다 아직 컴퓨터 온라인 망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대개 글과 도장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문서를 변조할  경우 다른 지역에서 추적하기 힘들다. 물론 양국 정부에서 알게 되면 범법 행위로 간주될 것으로 보인다).

 

  박은 끄즈오르다 주로부터 추방당해 한국으로 들어올 , 이미 추방 기록이 들어있던 여권 부분을 없앤  같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당국에 밝혀지게 되면 여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거나 출입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입국  추방기록이 드러났다면 국위손상 혐의로 입국 당시 공항에서 바로 입건될 수도 있었다).

 

그는  사전에 악쭈빈스크 지역에서도 추방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 신학교 용지 명목으로 구입한 20000 상당의 땅도 되팔아 챙긴 터였다. 더욱이  지역에 있는 고려족 여자 가운데 그의 계약에 관여한  2,000불을 받을  있다고 했다(결국  지역 선교 자산이 그만 증발해 버리고  것이다).

 

  박은 이런 여러 가지 모순된 언행과 범법 행위로 인해 선교지 교회는 물론 주위의 반발을 샀다. 특히 현지 여자를 자신의 동생과 결혼(?)시키고도 적절한 예우를 하지 않으므로 더욱 반발을 사게   같다. 결국 현지 정부에서는 그가 법을 어긴 사실을 문제삼아 강제 추방을 시켰던 것이다

  박은 일주일 간의 추방 기한 동안 서둘러 재산을 정리하고 남은 것은 끄즈오르다에 보관해 두었다. 본인이 물품 인수비를 내자 동생이 미리 가서 우랄스크로 옮긴 것이다

 

 사실을 놓고 그는 내게 바자회를 열었더니 물건이 1500 어치나 팔렸다고 둘러 댔다. 숱한 거짓말 속에서도 자신의 명예 관리에 대단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박은 현지로부터 강제추방당해 어쩔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음에도 강제추방 당한 사실을 감춘  K선교회 단지 건강상 이유 이유로 철수했다고 알렸던 것이다

 

 K선교회에서는 후속 조치할 때까지 현지에 가서 대기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미 돌아갈  없게 되자 또다시 꾀를 내었다.  바로 현지 교회가 단체를 탈퇴하는 공고를 신문에 내어 K단체와 무관하다고 처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물론  또한 박의 자작극으로 보인다).

 

 결국 박이 소속했던 교단에서 그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그를 면직 처리를 하고, 교단장 명의로 박에 대한 일체 지원을 중단할 것을 산하 교회에 통보했다.

하지만 사람은 선발할 때 주의했어야 했다. 이미 엎지러진 물이 된 것이다더욱이 K선교회 사람들도 자세한 현지 내막은 모르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은 이런 일이 있은 다음에도 자칭 선교사라며 선교회보를 만들어 돌리는  신분을 유지하려 들었다. 아직도 선교지에 남아 있는 생필품   자산과 현지인 여자와 결혼(?) 살고 있는 동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던  C선교회를 자주 출입하며 단체 총무인 L장로에게 농담하듯 현지로 가줄 것을 요청하곤 하다가 본인과 연결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그는 현지 물품을 팔아 챙길  계속 선교사로 행세하기 위해 우리 가족을 제물로 삼은 것이다 동생의 (?) 다른 주로 보낸  또한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그의 이런 비인도적인 성향으로 인해 결국 추방이란 결과까지 낳게 된 것으로 보인다

( 박은 본인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지난 4 간 선교활동을 하는 동안 건강이 나빠져서 소속단체에 휴가를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탈퇴했다고 주장했다. 멋대로 살고도 자기에게 불리한 말은 철저하게 피해 나갔던 것이다).

 

  그는 또 선교지를 반납해 지금은 (자신을 파송했던) K단체가 관장하고 있는데 관리를 잘못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이러한 그의 말과 달리 현지에서 발견된 박의 편지에는 K단체측이 사람들을 보내 교인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어 그의 말이 모순됨을 드러냈다.

이글의 수취인은 그가 별도로 관리해  몇몇 후원자로 보인다.

 

 이처럼 선교사 선발이 잘못될 경우 뒤늦게 현지를 수습하는 일은 쉽지 않다따라서 처음부터 신앙과 성품 등을 고려해 양질의 선교사를 파송해야  것이다반대로 사람을 너무 의심해 측근자 위주로 선발하는 태도 또한 문제일 수 있다. 결국 서로 믿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박은 소속 단체를 탈퇴한 후 개인적으로 현지교회를 원격 조정하기 위해, 기존 단체(K단체를 말한 듯)가 가난하고(?) 지원이 약해 곤란하니 후원이 더 낳은 다른 선교단체(아마 자신을 가리킨듯-)로 옮기면 어떠냐는 글을 보냈다.

그러나 정작 보리스 선생님을 비롯한 현지 교회 중심 교인들이 이글을 읽고 오히려 그의 뻔뻔스러운 태도로 인해 몹시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이들이 정작 그들을 지도했던 자가 소속 교단을 등진 상태임에도 우리는 한 번 연관 맺은 곳과 지속적인 관계를 갖기 원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주위에 있는 한국 선교사를 찾아가 자신들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책을 세워나갔다. 

 

 결국 본래 소속했던 K선교회 지휘를 받게 됨에 따라 박을 데리고 온 신0태가 관리하게 되었다. 오히려 현지인들이 스스로 판단해 한국 교회와 맺어진 데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 것이다. 이들은 박으로 인한 지난 상처가 남아있지만 한동안 보리스 선생님을 중심으로 자율적인 교회를 유지해 나갔다. 

 

0태는 이런 결과에 대해 이곳을 지교회 라고 단정지었다. 이미 오랫동안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온 교회를 지교회라고 표현하는 것은 모순이 있어 보이지마 주는 자(?)의 권리하고 본 것 같다.  끄즈오로다 교회는 이미 역사가 오래이고 환란 속에서도 꿋꿋이 신앙을 지켜온 개체 교회인 것이다

보리스 선생님은 이 나라 교회가 허가제인 만큼 교회 관리 또한 반드시 목사가 해야 된다종교경찰에 도움을 청해서라도 사태를 수습해야 할 것 같다 고 말했다하지만 우랄스크는 남부 도시와 달리 종교부가 명예직일 뿐이어서 그분의 말대로   없었다카자흐스탄은 주마다 법을 적용하는 기준이 달랐다. 특히 교회 도장을 가진 쪽이 유리한 탓에 더욱 어려웠다).

보리스 선생님은 악쭈빈스크에도 교회가 있는데 현재 폐쇄된 상태여서 그 허가증과 직인을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데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박과 같은 자가 이용하지 못하도록 아예 서류를 그분 자신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누가  땅의 교회를  사랑해 왔는지 비교가 되었다. 

 악쭈빈스크 지역은 카자흐스탄에서 비교적 발달한 도시로 고려인만도 1,000명 이상 거주하는 곳인데다 기존 교인 또한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선교를 한다고  나라까지 가서 도리어 갖은 오염을 남긴 기공이의 행적을 지켜보면서 한국 교회와 선교지 사이에  벽이 있음을 느꼈다. 언제  무너진 제단이 복구되고 상처받은 영혼들이 치유될 것인가. 

  또한 한국 교회에게 주어진 과제라 생각되었다

 

  우랄스크 지역은 처음으로 교회가 생겼다지만 신학이나 선교훈련을 전혀 받지 못한데다 사생활 또한 무분별한 박의 동생이 맡았던 관계로 토양이 고르지 못한 상태였다.  

  박의 동생은 설교 때 형의 노트를 대신 읽는 정도였는데 이따금 박과 함께 3-4개월  한국 나들이를 나갈 때면 현지인 평신도들이 돌아가며 그 노트를 대신 읽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 교회를 출석해  성도들 또한 목사 신분이 무엇인지 또 진정한 교회상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현지에 온 이후 마치 사고 지역을 수습하러 온 목사같이 느껴졌다. 박으로 인해 한국인의 이미지가 많이 흐려진 탓에 한국 사람은 안 그런데 어쩌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 것 뿐이다는 말로 해명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또 박의 신분과 그의 지난 행적을 생각할 때마다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지난 4 간 한국교회로부터 엄청난 선교비를 받아와서 사역(?)했다는  결과가 이럴 수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이런 일로 인해 한국 교회가 점차 선교 의식이 식어갈 것이 우려되었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심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저가 선교를 위해 어느 정도 수고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신앙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이제 이곳에서 정착하기 위해서는 박이 한 일과 연결 고리를 찾기 어려워 개척의 수고 이상 감내해야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몇몇 현지인조차 그들 다시 만나면 혼내겠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이곳 교인들 이나 고려인 사회 또한 또한 박으로부터 많이 우롱당한 셈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바뀐  처음 만난 남한 사람이 결국 이런 결과를 낳은 만큼 이는 한국 교회와 우리 나라 전체에까지 큰 손실을 입힌 셈이다.

 

 현지 교인들은 언제는 한국에서 목사가 온다고 해서 밤늦도록 힘을 모아 사택을 수리하고 거금을 들여 도배까지 했음에도 자신들이 기다리던 목사를 기껏 데려와(?) 놓고는 이번엔 다시 축출하려 드는 박의 태도에 아연했다.  한국인 목사를 반갑게 맞이하려던 순박한 현지인 성도들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한 터라 나또한 할 말이 없었다

  당시 박은 한국의 어느 성도로부터 헌금을 받아 외국인 자격으로 집을 살 수 없음을 알고 교인들의 보증을 받아 교회용 사택으로 구입했다 한다그런데  사이 시세가 1/3 이하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런 것조차 보상받아 보려고 한국에서 그 대상을 찾았던 것이다박은 이미  지역의 선교 자산을 확보하고 이런 일에 흥미를 가졌던  같다

 그래서 우랄스크에 남아 있는 집과 물품들을 이용해 남은 자산 마저 챙기려 든 것이다. 우리 가족은 그의 이용물에 불과했다.  

  박은 우랄스크가 자신과 연관된 사역지(?) 가운데 최후의 보루(?)라 생각하고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가 보다. 그래서 한국으로 쫓겨나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면서도 원격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교사로 자처하고  끄즈오르다와 악쭈빈스크  지역은 이미 자신이 근처에도   없는 상태였음에도 동생이 있던 우랄스크 교회 책임목사라는 미명 하에 선교 헌금까지 받아  것이다

  역시 그의 글을 보고 감동을 받은  사실이다. 

 

우리 가족이 선교지에서 어려운 상황 속에 놓여 있자 현지의 숨은 제자들이 보이지 않게 목사를 도와주어 감사했다. 특히 이 지역에서 한국어를 제일 잘하는 알라 선생님은 초창기 때 통역을 맡는 등 온 식구가 교회 일에 나섰다가 박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났던 가족이다. 우리를 만나게 됨으로 위로와 함께 신앙을 배울  있게 된 것이다. 

 

 벨라와 율라 라는 분은 시누이와 올케 사이로 우리를 여러모로 도와 주었다아리스, 리이사 선생님 부부는 노부부임에도 우리를 많이 도와주었다리이사 아주머니느 심장병을 비롯해 아픈 곳이 많았는데 우리가  약을 먹고 많이 차도를 보인다며 좋아하셨다. 결국 우리는 이들을 돕기 위해 멀리까지 오지 않았던가. 이분들은 바울을 도왔던 아리스굴라와 브웰라 같은 숨은 제자였다.우 또한 틈틈이 이분들을 찾아가 교제를 가졌다. 

 

  박의 사주를 받는 방해 세력으로 인해 낯선 땅에 오자마자 피곤한 나날들이 계속됐다. 이때 사라 선교사의 생일을 맞게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생일을 아주 중요시 생각함에도 어쩔  없이 그냥 지나치게 되었다. 참으로 외로운 나날들이었다

 

  저녁 무렵 누가 찾아왔다. 바로 벨라와 율라 아주머니가 어떻게 알고 꽃다발과 선물을 준비해 가지고 찾아온 것이다. 이분들은 교회와 목사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벨라는 전직교장 선생님이시도 하다

 

  ( 우리네 젊은이 글에 바로 이 박이 자신을 위해 증언해 줄 거로 믿고 있는 내용이 있더군요.  과연 그런 자리(?)가 마련된다 해서 나타날까. 유유상종이란 말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가보지도 않은 카작 이야기를 들먹이며 좋지 않은 목적으로 사용하는 자들이 있어 천사홈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건물이야기를 소설이라고 표현한 것도 어쩌면 카작에서 온 글을 보고 배우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저는 주어진 사실 그대로 기록하고 판단은 독자의 지혜와 영성에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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