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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07:57

신앙고백과 교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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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과 교회교육

1. 교회의 가르침

교회는 학교가 아니지만 교회에서도 교육은 중요한 것이다. 처음부터 교회에는 가르침과 배움이 있었다. 구약을 보자면,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는 하나님의 크신 사역을 자녀에게 가르쳐야 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은 해마다 애굽에서의 해방을 특별한 행사로 기념해야 했다. 그 행사의 규칙 중 하나는 이것이다. “이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사람을 치실 때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숙여 경배하니라.”(출12:26, 27). 그래서 매 해마다 아이는 행사의 의미에 대해 질문해야했고 아버지는 해마다 그것을 설명해야 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역을 암기할 만큼 확실히 알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에게도 가르치는 임무가 있었다. 제사장에게는 술마시는 일이 금해진 일인데 그 이유 중에는 그들이 “여호와가 모세에게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야” 했기 때문이다(레10:9-11)

신약에 있어서는 예수님이 가르치셨고, (예, 마 4:23)제자들도 가르쳤으며(예, 행 4:2) 디모데도 가르쳤다. 사실 교회에서는 가르치는 일이 계속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것을 명한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도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딤후 2:2)

2. 가르침의 성경적 규칙

교회에서 어떻게 가르치면 되느냐의 문제에 답하기 위해 두가지 성경본문을 살펴보자.

첫째로 딤전 1:11에서 바울은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고 하였다. 사도바울은 여기서 디모데가 교회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설명하고 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두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로 그것은 사도바울이 가르치는 것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물론 바울이 의미하는 것은 가르치는 자는 다른 제자들이나 예수님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도바울의 말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다른 제자들의 말과 동일한 것이다. 또 예수님 자신은 바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맡기셨다.(행 9:15). 이처럼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성경에 기록된 것을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바울이 두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그 가르침이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 가르침은 하나님과 그의 영광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물론 그 가르침에는 예수님과 우리의 구원도 나와야 한다. 하지만 구원의 복음은 항상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이신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두 번째의 본문은 행 20:27인데 여기서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오랫동안 에베소에 머물면서 복음을 가르칠 수 있었다.(19:9․10). 그 결과로 에베소에도 교회가 생겼다. 나중에 바울은 그 교회의 장로들에게 자기가 그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다 전했다’고 말한다. 에베소의 교인들은 복음의 어떤 한 부분을 모른다고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청중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전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교회가 가르치는 일을 위한 세가지 규칙을 발견하다.

������. 교회의 가르침은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어야 한다.

������. 교회의 가르침은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 교회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제시해야 한다.


3. 성경적 규칙들과 신앙고백

이제 이 규칙들을 신앙고백에 적용해보자. 가르침을 위하여 사용된 고백은 초대교회에 이미 만들어진 사도신경과 16,17세기에 생긴 요리문답이다. 영국과 미국교회의 선교를 받은 나라에서는 특히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위 두가지 고백 사이의 차이는 크다. 사도신경은 매우 함축된 형식으로 신앙의 내용을 요약하고,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신앙을 보다 광범위하게 설명한다.

또 형식뿐만 아니라 다루는 방식도 다르다. 사도신경은 하나님의 사역을 따라 신앙을 요약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로부터 영생까지 교회의 교훈을 제시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보다 논리적 순서를 따라 신앙을 설명하는데 성격, 하나님, 찬조, 범죄, 구원 등을 다룬다. 하지만 둘 다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 내용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하는 규칙도 이 고백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도신경은 사실 삼위하나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성부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사역이 언급되고, 다음으로 성자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의 사역이 언급되고, 다음으로 성령님이 언급되고 마지막으로 교회로부터 영생까지 삼위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이루시는 일이 언급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는 하나님의 중심적 자리가 이미 첫 문답에 나타난다. “문: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규칙은 하나님의 완전한 뜻이 나온다는 것인데, 그 규칙은 복음의 내용을 제한시키려는 위험으로부터 가르침을 지켜준다. 인간의 경향은 자기를 중심하고 자신의 구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창조나 교회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아주 간단해도 하나님의 사역의 핵심적 사건을 고백하고 창조와 교회도 언급한다. 또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은 구원사역을 넓게 설명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문답8,9,10) 그리고 말씀과 성례의 부분에서 간접적으로 교회(문답 89-97)가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교회의 신조, 특히 사도신경과 소요리문답은 교회의 교육을 위하여 잘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4. 교회의 가르침과 신조형성의 이유

정확한 신앙고백이 교회의 교육을 위해 왜 중요한지의 문제에 대한 대답은 교회사에서 잘 나타난다.

사도신경은 그 원형이 이미 2세기의 교회에서 사용되었다. 당시의 목사들도 교회의 교리를 예비신자에게 설명해야 했고 그 요약으로써 사도신경을 사용했다.

예비신자는 그 신조를 외워야 했으며 세례받기 바로 전에 그 신조를 공적으로 고백해야 했다. 세례는 삼위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를 고백할 때에 받는 것으로서 교회의 교육은 이 삼위하나님을 설명하고 사도신경에서 이를 요약적으로 표현했다.

어거스틴은 신조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성경의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려운 일인데, 그 핵심적 내용을 사도신경을 통하여 잘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 받을 신자가 신조를 외우고 확실히 알 때에 성경 내용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암기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목사들은 신조의 내용을 넓게 설명했다. 하지만 중세교회에서 점차로 이런 설명이 없어졌다. 외적으로 신조를 외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믿음의 내용이 보통의 신자를 위해서는 너무 어려운 것이니까 신자는 교회가 믿는 것을 외적으로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다.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의 개혁을 시작했을 때 이 중세교회의 악영향이 얼마나 심한 것인지를 보았다. 처음에 신부이었다가 개혁운동에 참여한 목사들 중에 사도신경을 잘 설명하지도 못하고 때로는 잘 암송하지도 못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때 루터는 그들이 교회의 교리를 설교로 설명하도록 그의 대요리문답을 썼고, 또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소요리문답을 썼다. 아이들은 사도신경 뿐만 아니라 소요리문답의 질문에 대한 대답도 외워야 했다. 왜냐하면 자녀를 포함한 모든 교인들은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셨고 또 행하시는지를 잘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120년 후에 웨스트민스터 공의회는 유명한 소요리문답을 작성했다. 당시에 이미 교육을 위해 많은 요리문답과 같은 것이 있었는데 왜 또 하나를 만들었는가? 그 이유는 스코트랜드교회과 영국교회 간에 믿음의 통일을 이루기 위함이다. 한 교회가 교육을 위해 이것을, 다른 교회가 저것을 사용하게 되면 교회에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웨스트민스터 공의회는 네가지 요항을 제시했는데 그 중 교육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요리문답을 ‘통일의 네 번째 요항’이라 명하였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돌이켜 볼 때 다시 세가지 규칙을 발견할 수 있다.

������. 성경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신경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교할 때 사람들은 그 신경을 외워야했다.

������. 루터 시대에는 암기만으로 충분치 않음이 나타났다. 교회의 교육을 위하여 교리를 설명하는 요리문답이 필요해졌다.

������. 웨스트민스터 공의회 시대에는 목사들마다 자기 의견대로 교리를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요리문답을 작성했다. 그 요리문답의 목적은 교회의 통일이었다.




5. 결론 성경의 규칙대로, 그리고 교회가 수세기 동안 이루어 놓은 지혜대로 신앙고백을 교회의 교육을 위해 사용하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신앙의 내용을 불확실한 말로써가 아니라 잘 숙고되고 그리고 교회가 인정한 정확한 말로 표현하게 된다. 그 결과로 신앙의 내용은 신자의 마음속에 정확한 형식을 갖게 되고, 신자는 자신의 신앙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또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교육할 때 개인의 한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목사와 교사도 제각기 기호가 다르다. 그 결과로 신앙교육이 일면에 치우칠 수도 있고, 또 교파내에서도 생각이 다른 다양한 그룹들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신앙고백은 완전한 교리를 제시하니까 교사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다. 그는 교백을 따라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결과로 가르침을 받는 신자들 가운데도 신앙의 일치가 형성된다.

이렇게 온전한 고백을 따라 세계의 모든 교회의 교사들이 가르치고 교인들이 배운다면 온 세계의 교회 안에 바른 신앙의 일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 참고 사항: 여기에 입력된 글은 전 네델란드 선교사로서 고신대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셨던 고재수 교수(Dr N H Gootjes)께서 월간 고신과 몇 잡지에 연재한 글입니다(신앙과 교회교육은「교의 신학의 이론과 실제」디다케 출판사 ). 그분은 지금 Canadian and American Reformed Churches의 교단 신학교인 Theological College of Canadian and Reformed Churches의 교수로 계십니다.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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